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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 생애까지 친구다!”
실패한 민중봉기였으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023년 11월 26일 (일) 00:26:41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아! 예수님! 마리아님!...”

1626년 6월 20일. 조선인 ‘빈센트 권(Vincent Caun-權)은 나가사키(長崎)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아홉 명의 신부들과 함께 화형을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1637년 12월-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熊本)현 서쪽 아마쿠사(天草)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일본 역사상 최초이자 대규모의 무장봉기(一揆)였다.

   
(아마쿠사 시로의 동상)

이 봉기를 크리스천들이 농민과 함께 일으켜서 일본인들은 ‘기리스탄의 난(吉利支丹の亂)’이라고 하며, 나가사키의 시마바라와 구마모토의 아마쿠사가 공동전선을 펼친 관계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の亂)’이라고도 한다. 그 중심에는 16세의 미소년 ‘아마쿠사 시로(天草四朗, 1621-1638)’가 있었다.

‘아마쿠사 시로’의 본명은 마쓰다 도키사다(益田時貞). 임진왜란 당시 선봉장이었던 가톨릭 다이묘(大名)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낭인 마쓰다 진효에(益田甚兵衛)의 아들이다. 본래의 세례명은 제로니모(Geronimo)였으나, 프란시스코(Francisco)로 바꿨다. 그는 하라(原)성에서 봉기군과 함께 전사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러한 민중봉기는 무슨 이유로 일어났을까.

막부의 크리스천 박해와 기근이 원인

민중봉기를 촉발시킬 만한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한 임산부가 차가운 강에서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유인즉, 밀린 세금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해마다 현물 공납으로 수입의 약 50%를 쌀로 바쳐야 했다. 거기에 번(藩)의 크리스천 박해와 기근에 의한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무장봉기가 발생했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본다.

1637년을 마감하는 12월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1일, 시마바라의 무장봉기군은 하라(原)성터에서 농성을 준비했다. 3일, ‘아마쿠사 시로’가 입성했다. 9일, 1만3000명이 각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합류해 무장봉기군은 총 3만7000여 명에 이르렀다. 20일, 막부군 4만 명이 하라성을 공격했으나 봉기군은 세 번에 걸쳐 막아냈다. 전투는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사진: 민중봉기군과 막부군이 싸운 하라성터)

1638년 1월 1일 막부군의 총공격에서는 네덜란드의 군함에 의한 포격이 가해졌고, 하라성의 포위를 강화하면서 성내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폈다. 2월 27일 서남제도로부터 동원된 연합군 12만5000명이 총공격을 개시했고, 28일엔 하라성이 최후를 맞았다. 막부군과 내통했던 ‘야마다 에모사쿠’를 제외하고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郞)를 비롯한 3만 7000여 명의 봉기군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지금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 생애까지 친구다!”

봉기군들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 전투에서 막부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사망 2000명, 부상 1만 명이 나왔다. 전투 이후 아마쿠사는 막부의 직할 관리영토가 됐고, 크리스천 탄압은 더욱 강화돼 1639년에는 최종적인 쇄국령이 선포됐다. 이후 200년 이상 쇄국의 시대가 계속됐으나, 그러한 통제 하에서도 주민들의 신앙생활은 은밀히 계속됐다.

1873년 종교의 자유가 허용돼

결국 메이지(明治) 6년(1873년) 크리스천 금제(禁制)가 해제되고, 다음 해 아마쿠사(天草)에 오에(大江)교회가 창립돼 ‘종교의 자유 시대’를 열었다.

   
(사진: 언덕 위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에’ 교회.)

현재의 교회건물은 아마쿠사 지역의 전도에 평생을 바친 프랑스의 ‘가르니에(Frederic Louis Garnier, 1860-1941)’ 신부가 지역 신자들과 협력해서 세웠다.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일본 막부의 쇄국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실패한 민중봉기였으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했다. 후일 문명개화에 뒤떨어진 일본에게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라는 사회 진화를 위한 ‘원초적 본능’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숨은 크리스천의 섬, 아마쿠사(天草)는 문학자들의 왕래가 많고 문학비도 많다. 하지만,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23-1996)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아마쿠사는 나그네를 시인으로 만든다. 더욱이 시인이 나그네라면,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1/ 일본의 유명 詩人이자 歌人) 등이 그러했듯이, 모래 속에서 우는 아득한 서쪽의 파도 소리까지 알아듣고, 역사라는 허공 속까지 음유하며 걷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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