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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줄리아’와 ‘빈센트 권’의 두 번째 이야기
2023년 09월 26일 (화) 15:22:14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 1596년 6월 어느 날

“얘야! 이제 너는 나의 딸이다.”

“제가요? 저는 조선의 아이입니다. 저는 조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다.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너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가 없느니라.”

“...”

“그리고, 진정 너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느냐?”

“네. 조선의 부모님과 사람들이 뭐라고 불렀었던 것 같은데,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알았다.”

평양성에서 아이를 구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인과 나눈 대회다. 이 또한 아이의 운명일터. 아이는 세례명이 ‘쥬스타’인 고니시(小西) 부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규슈의 우도성(宇土城)에서 살았다. 성주의 양 딸이 되어 쓰시마에서 보다는 격조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던 것이다. 아이가 나이에 비해서 철이 빨리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랐다. 누구의 권유에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니시(小西) 부인은 그러한 아이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듯했다.

“그래? 그럼, 너의 이름을 지어야겠구나. 성은 ‘오다’ 어때? 조선에서 왔으니까. 이것은 내가 조선 사람들에게 물어서 지은 것이다.”

“오다 요?”

“그래. ‘오다’를 성(姓)으로 하고 이름은 세례명으로 하자.”

“네. 어머니! 뭐든지 다 좋습니다.”

   
(우도 성터)

아이는 ‘오다’라는 성을 여러 번 되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성이 지어진 아이는 이렇게 규슈의 우도(宇土_성에서 고니시 가문의 양녀(養女)로 자랐다. 그리고, 양 어머니로부터 무용과 노래도 배웠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고 할까? 쥬스타 부인은 아이의 재기(才氣)에 혀를 내둘렀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이로구나.’

쥬스타 부인은 양아들 ‘빈센트 권’에게 세례를 주었던 베드로 모레홍(Petro Morejon) 신부에게 연락을 했다.

며칠 후 쥬스타 부인의 초청으로 모레홍 신부가 우도성으로 왔다. ‘빈센트 권’으로 재탄생한 사내아이도 같이 왔다.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아? 너도 왔구나. 그 사이 많이 컸구나.”

“네. 쥬스타 님!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나요?”

“그렇습니다. 60명의 새로운 신도들이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부님! 잘 부탁합니다.”

“60명이요? 쥬스타 님의 전도의 힘이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시다니요.”

“아닙니다. 모두가 신부님의 은혜이시죠.”

그리고서 쥬스타 부인은 모레홍 신부와 빈센트 권에게 차를 내왔다. 차(茶) 향기가 방안의 분위기를 한껏 훈훈하게 만들었다.

“차의 향(香)이 무척 좋군요. 이 지역에서 나는 차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도의 차 맛이 아주 훌륭합니다.”

“찻잔도 아주 기품이 있군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조선에서 가져온 이도다완(井戶茶碗)입니다.”

“소문대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멋이 풍기는 군요.”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조선의 막사발이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막사발에 흠뻑 빠져 있었다. 완벽미를 추구하는 일본에 비해 조선의 막사발은 자유분방하고 틀을 깨는 파격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서다.

이들의 대화는 차와 찻잔에서 다시 조선에서 데려온 여자 아이로 옮겨졌다.

“신부님! 저에게 양딸이 하나 생겼습니다. 조선에서 온 아이입니다. 이 아이도 지난 몇 달 동안 천주교 교리를 익혔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무척 영리합니다. 이번의 신부님 초청은 60명의 세례 외에 이 아이에게도 세례를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까? 빈센트 권에 이어서 이제 따님을 얻으셨군요. 마님의 기도에 하느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어머님! 조선에서 온 여자 아이라고요? 그럼 저도 여동생이 생겼네요?”

옆에서 차를 마시면서 귀동냥을 하던 빈센트 권이 끼어들었다.

“그렇단다.”

쥬스타는 아이를 신부님 앞으로 오게 했다. 모레홍 신부도, 빈센트 권도 깜짝 놀랐다. 아이의 용모도 예뻤지만 눈동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앉아라. 앞으로 너를 돌봐주실 신부님이시다.”

   
(줄리아 오다)

아이는 긴장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크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쥬스타 부인이 입을 열었다.

“신부님! 이 아이의 세례명을 뭐로 할까요?”

모레홍 신부가 바로 답변했다.

“음...줄리아, 어떨까요? ‘젊고 활기찬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줄리아요?”

“네. 쥬스타 님. 아이의 눈동자가 살아있어요. 활기가 넘쳐 납니다. 주님께서 유용하게 쓰실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줄리아. 아주 좋습니다. 이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세례명입니다.”

빈센트 권도 조선에서 온 아이의 세레명으로 줄리아가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쥬스타 부인을 따라서 교회로 갔다. 쥬스타는 교회 입구에 성수에 손을 담그고 성호를 그으며 아주 낮은 음성으로 기도했다.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아이는 머뭇거릴 뿐 따라하지 못했다. 이어서 입당송과 함께 세례 의식이 시작되었다.

“하느님.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불충한 백성에게 맞서 제 소송을 이끌어 주소서. 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힘이시옵니다.”

모레홍 신부는 60명의 신자들 한 명 한 명을 호명했다. 그리고, 긴 강론을 했다.

“오늘의 세례 의식은 우리가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를 용서받고 교회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입문예식(入門禮式)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

묵주 기도가 마무리되자 줄리아의 기도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스스로 우러나온 자발적인 기도였고,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한 기도였다.

“주님은 조선에서 태어나 당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저를 인도하시고자 아우구스티노(小西行長) 장군을 통하여 일본에 오게 하시고, 유일한 구원이 있는 성스러운 계율과 당신의 소식을 알게 하시는 커다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영원히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모레홍 신부와 쥬스타 부인, 그리고 ‘빈센트 권’은 어린 줄리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모두가 성호를 그으면서 기도했다.

“아니, 이토록 어린 아이가 이렇게 어른스럽게 기도를 하다니...놀라운 일이로다.”

아이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만큼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때를 같이해서 교회에서 ‘성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 마리아여!

자비로운 성모여!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험하고 거친 이 바위에서

당신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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