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퇴근 무렵 인사동을 갔다. 마침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코로나를 이미 잊은 듯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건강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쓴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목적지는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2층. 조현종(68) 작가의 제11회 개인전 참가를 위해서다. 오랜만의 발걸음이었다. 인사동은 언제나처럼 정감이 넘쳤다. 문화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2층 계단을 올라가자 넓은 전시실에 꽃이 만발했다. 물론 꽃그림들이다.

‘내안의 뜰’이라는 전시 타이틀과 결핍으로부터의 안식처(Sanctuary from Deprivation)라는 부제(副題)도 독특했다.

전시의 의미에 대한 조현종 작가의 말이다.

“오랜 인류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도심 속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현대의 인위적 문명 속에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차갑게 우뚝 선 빌딩 숲 사이에서 어쩐지 융화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70여 점의 그림들과 하나하나 마주했다. 작가의 말처럼 도시민들은 빌딩 숲에 갇혀서 허우적거리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에게 뜰을 선사한 것이다. 순간 브라질 파울로 코엘료(76)의 소설 <브리다>의 한 대목이 연상됐다.

<브리다. 다음과 같은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삶에서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건물을 세우거나, 혹은 정원을 일구거나. 건물을 세우는 사람들은 그 일에 몇 년이라는 세월을 바치기도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쌓아올린 벽 안에 갇히게 됩니다. 건물을 세우는 일이 끝나면 그 삶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건물을 세운사람이나 그 안에서 사는 사람 모두가 벽안에 갇히니까. 그러나, 정원을 만든 사람은 다르다. 어떤 내용일까.

(오드리 헵번 그림 앞에서 전시의 의미를 설명하는 조현종작가)

<정원을 일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몰아치는 폭풍우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계절에 맞서 늘 고생하고 쉴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건물과는 달리 정원은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정원을 일구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의 역사 속에 온 세상의 성장이 깃들어 있음을.>

작가가 그린 한 송이 한 송이의 그림은 바로 정원을 일구는 것과 같을 듯싶다.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 관객과 대화를 하는. 조 작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것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은 직관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림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기 보다는 작품이 전달하는 원초적 아름다움에 반응하면 된다”면서 “그저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생동감 넘치는 색들로 표현한 활기찬 붓놀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풀냄새나는 정원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시인 이규각 선생은 이번 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빛과 색채의 관계를 캠퍼스에 담는 독창적인 길은 반복된 일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조현종 화백의 작품에서만 엿볼 수 있다. 정원을 실내로 이입하는 과정에는 작가의 고뇌가 숨을 쉰다. 이런 과정은 표현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네 삶의 흔적이기도 한 '편린')

필자는 ‘편린’의 작품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림을 보기 전에 벽에 붙은 글을 또박또박 읽었다.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우리가 보고 느끼는 대상은 무엇인가의 흔적이며/ 과거의 경험과 감정이 축적되고, 변형되고, 융합된 결과물이다/ 흔적은 표식이다/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숨겨진 저마다의 이야기/ 아픔, 슬픔, 기쁨, 행복, 희망 등의 표현이다/ 인간의 삶과 비슷함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모든 순간은 편린이고/ 지금의 우리들의 이야기다.>

편린(片鱗)에 대한 조현종 작가의 말이다.

“편린은 한 조각의 비늘 아닙니까? 사물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이지요. 버려진 병뚜껑, 나사못, 돌멩이...들까지 말입니다.”

(22년 전 바로 이자리에서 일러스트를 그렸다는 조현종 작가)

광고회사에서 일러스트 작가로서의 외길을 30여년 걷다가 화가로 변신한 지 어언 17년-이번에 개인전 및 초대전 11회를 맞았다. 이번의 전시회는 오는 25일(화)까지 열린다.

그림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림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고 에너지를 불어 넣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림을 보면 큰 위안을 받게 됩니다.”

조현종 작가의 말을 뒤로 하고 전시장을 나섰다. 인사동 거리의 사람들은 더욱 불어났다. 계절은 이미 봄을 넘어 여름으로 들어 선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