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에 꽃이 만발했다. 꽃구름 속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으나 대부분이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마다 행복이 넘쳐 보였다.

(안양천변의 꽃길과 사람들)

4월이면 김순애 작곡, 박목월 작사의 <4월의 노래>가 떠오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중략)/돌아온 4월은/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말씀과 기도로 여는 하루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설치해 놓은 율무에 발목 잡히지 않게 하소서.”

“무한하고 충만한 영적자원을 기도로서 내 영혼에 풍족히 채우게 하소서.”

“극심한 고난에 처할 때 간절한 기도로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게 하소서.”

매일 새벽 좋은 말씀(성경)을 카카오 톡으로 보내주는 L(LCS·79)씨가 있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좋은 말이다.

대기업 출신인 그는 해외근무도 많이 했다. 정치·경제·사회 등 주요 뉴스도 보내온다. 

(이태리 콜로세움 앞에서의 L씨)

“국내 관광이 활성화 되어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호남이 대한민국 발전의 핵심 거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달 31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개최된 ‘2023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의 개막식에서 행한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중 일부다,

2일 새벽에 L씨가 보내온 영상은 음악과 함께 이해인 수녀의 <4월의 시>였다.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봄도 사랑하지 못하고서 소식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는 것일까.

지난 해 가을에 떠난 사람

필자의 지인 중에 L(76)씨가 있었다. L씨 또한 매일 새벽 카카오 톡으로 문자 메시지나 아름다운 사진을 보내왔다. 강아지를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가끔씩 휴대폰에 저장된 반려견의 사진을 필자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강아지의 이름이 소망(所望)이었어요. 건강하던 강아지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아났지 뭡니까? 소망대로 16년을 살았습니다.”

“가을인 듯 겨울 같고 겨울인 듯 가을 같은 11월입니다. 남은 가을 소중하고 멋지게 보내시고, 11월도 힘차게 파이팅하세요!”

그런데, 그의 메시지가 끊기고 말았다. 지난 해 11월 중순의 일이다. 전화기도 꺼져 버렸다. 몇몇 주변 사람들도 같았다. 감감 무소식. 심성이 착한 것으로 소문난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또 한사람의 L(71)씨 이야기다. 코로나로 인해 캐나다에서 3년 만에 한국에 왔다. 오랜 세월 같은 동네에서 살았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을 자주 왕래하는 비즈니스맨이었다. 그 역시 만날 때마다, 해외 생활과 반려동물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가 큰 수술을 했는데 개의 수술비가 저의 수술비보다도 더 비쌌지 뭡니까?”

L씨는 그 개를 싫어했다. 원인은 식탁에 올라와서 피자 한판을 다 먹어치우고, 아무데서나 실례를 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온 가족이 없을 때 개가 그의 방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왔단다. 깜짝 놀란 L씨가 소리쳤다.

“이놈의 개새끼!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개는 순간 겁에 질려 방에서 나갔다. 그의 말이다.

“슬픈 눈빛과 몸동작...잊히지 않았어요. 때로는 그 놈의 눈동자를 떠올리면서, 가끔씩 눈물을 훔쳤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까요.”

L씨가 캐나다에 있을 때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개가 꿈속에서 침대에 올라와 자신의 곁으로 다가 왔단다. 잠에서 깨어나 한국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며칠 전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L씨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좀 더 잘해줄걸...’ 하면서.

아버지의 강(江)...인생의 강이런가?

L씨와 함께 동네 노래방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가 부른 노래는 ‘아버지의 강’이었다.

<아 저녁바람에 억새 울고/강기슭에 물새 울면/어디선가 들려오는/아버지의 뱃노래/사랑 하나로 날 키우시고/뱃노래 불러 날 재우셨던/아! 아버지 불러봐도 대답 없이/흐르는 저 강은/아버지의 강이여.>

노래를 부르던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나이 70이 넘어서야 아버지가 그리웠던 것일까.

그러던 그가 얼마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 전화를 걸어도,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다. 소문에 의하면 급히, 아주 급히 캐나다로 돌아갔단다. 가족들은 한국에 있으나 연락처를 몰라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버지로서의 보상 욕구 때문일까?’ ‘그의 운명일까?’

(알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인간의 보상 욕구는 열등감과 무력감에 대한 보상의 욕구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운명(運命)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피력했다.

“운명은 우리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숙명(宿命)이다.”

덧붙여서 알프레드 아들러는 ‘불가능은 없다. 인간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라고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다. ‘운명에 기죽지 말고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옳아 보인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운명의 탓으로만 돌리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잠을 못 잔다’고 해서 수면제를 먹는다든지, 현실 도피를 위해서 심산유곡으로 간다든지, 아무도 모르는 무인도로 숨어버린다든지...어떠한 방법으로도 ‘운명’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면으로 맞서서 근본적인 치료를 하라.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바탕으로 한 현명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필자가 만났던 이해인 수녀의 밝은 모습)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 볼랍니다//4월의 문을 엽니다.>

이해인 수녀의 詩처럼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리 있는데..오늘 이 봄을 사랑하고, 우리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자. 그래야 지금의 봄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연락이 끊긴 두 L씨가 웃으면서 필자의 곁으로 다가오는 날을 기대하면서, 두 발이 부르트도록 꽃길을 걸어보련다. 이 봄이 다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