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의 첫 날이다.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도 한다. 모두가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한다.

한편, 설이란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는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필자도 한 살을 더 먹었다. ‘지식백과’ 사전을 통해서 간략하게 정리한 설의 정의다.

민속학자 이종철(李鐘哲) 박사의 저서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를 빌어 설날에 대해서 한 번 더 알아본다.

“새해의 첫날은 묵은 세월을 아쉬워하며 보내고,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을 훌훌 떨쳐 버리며, 새로운 설렘으로 행복과 건강·부귀와 영화를 맞이하려는 날이다.”

그러면서 그는 “숭조보근(崇祖補根/조상을 숭배하고 뿌리를 지킴)이 퇴색되고, 이기적 개인주의와 님비(nimby)현상이라는 검증이 안 된 가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걱정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무너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관 상실’의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설날은 어떠할까.

<새해 첫날은/ 빈 노트의 안표지 같은 것/ 쓸 말은 많아도/ 아까워 소중히 접어 둔 여백이다//새해 첫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여 하이얀 산과 들/ 그리고 물상들의 눈부신 고요는/ 신(神)어 있는 화폭 같지 않은가.// 눈길에/ 문득 모국어로 우짖는/ 까치 한 마리.>

오세영(79) 시인의 시(詩) <설날>의 일부다.

필자는 설날 새벽, 시인과 반대로 창을 열지 않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공기도 신선했고, 바람결도 좋았다.

(공원의 작은 소나무 동산)

봄을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에서 일까. 소나무 아래 잔디밭에서 파릇파릇 새싹 돋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개를 들자 참새들이 ‘짹짹짹’ 합창을 하면서 날아올랐다. 시인은 ‘눈길에서 까치가 문득 모국어로 우짖는다’고 했으나, 소나무 위의 비둘기는 ‘구구...구구’ 울었다. 모국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예년과 달리 한복 차림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명절까지도 송두리째 망쳐버린 것이다.

집에서 아내와 둘이서 정연복 시인의 <설날 떡국>이라는 시를 연상하면서 떡국을 먹었다.

<설날 아침 맛있는/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덩달아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나무로 치자면 나이테 한 줄이 더 그어지는 셈이다./ 그래, 올해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자.>

떡국을 먹은 후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량 폭주로 성공하지 못했다. 점심시간 즈음에 유선 통화로 대신했다. 아이들의 낭낭한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한 모금의 청량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