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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닭갈비(鷄肋) 어떠세요?”
춘천 닭갈비와 함께한 하루
2020년 11월 08일 (일) 17:59:35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닭갈비 안 통했다.”, “닭갈비 힘 못썼다.”

지난 6일 오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스 속에서 속보로 뜬 김경수 경남 지사에 대한 판결에 닭갈비가 등장했다. 무슨 이유일까. 김 지사 측이 항소심에서 ‘닭갈비 저녁 식사를 했기 때문에 킹크랩 시연이 없었다’고 재판부에 ‘닭갈비 영수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바로 그 시각 필자는 일행과 함께 춘천에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긴급 제안을 했다.

“오늘 닭갈비(鷄肋) 어떠세요? 우리도 닭갈비 먹으러 갑시다. 소양 댐 올라가는 길목에 닭갈비 촌이 있습니다. 거기로 가시죠.”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던 필자 일행은 차를 급선회(急旋回), 북쪽으로 달렸다.

“혹시 북한으로 가는 건 아니죠?”

일행 모두가 자지러졌다. 다소 과묵한 사람이 의외의 조크(joke)를 던졌기 때문이다. 차가 가을바람을 뚫고 속도를 낸 20분 쯤 후에 ‘소양 댐 입구’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양편이 온통 닭갈비와 막국수 가게였다. 춘천의 명동만을 최고의 닭갈비거리로 알고 있었던 필자는 또 다른 ‘닭갈비 촌’과 만나서 놀랐다.

“소양 댐 전망대를 돌아본 후에 닭갈비집으로 갑시다.”

만장일치. 일행은 국회보다 더 신속하게 의견 통일을 했다. 소양 댐 근처 산들의 나무들은 이미 이파리들과 작별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망대 주변의 나무 이파리들은 아직도 곱게 물들어 있었다.

   
(사진: 소양강의 가을)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소양강 물은 잔잔했고, 유람선들도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하지만 하늘의 구름들은 질서 있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필자는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했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맑은 공기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공기만 마셔도 배가 불렀다. 신선한 공기를 잔뜩 마시고서 다시 차를 몰아 닭갈비집으로 갔다.

숯불갈비, 정겨움이 묻어나

닭갈비집은 생각보다 많았다. 여러 집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깔끔한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도 넉넉했다.

“철판 닭갈비가 아닌 숯불구이 집을 찾기 위해서 몇 바퀴 돌았습니다.”

“숯불구이 닭갈비라니요?”

필자는 반문을 하면서 일행을 따라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부탁드립니다. 매장 방문 전 ‘마스크 착용 필수!’ ‘손 소독 필수입니다...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발열, 인후통 증상이 있는 분들은 출입을 제한합니다. 꼭 지켜주세요!!!>

입구의 안내문이 거부감이 없었다. 하얀 벽에 한글과 한자로 쓰여 있는 ‘배려(配慮), 열정(熱情)’라는 글에서 이 가게의 신념(信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 테이블 위에 놓인 숯불)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숯불이 놓여졌다. 바깥바람이 차가 워서 숯불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졌다. 오랜 만에 만난 숯불이라서 정겨움이 묻어났다. 석쇠 철망 위에 큼직한 닭갈비들이 놓여졌다. 잠시 후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사진: 먹음직스러운 닭갈비)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건배는 종업원이 추천한 ‘춘천 생막걸리’로 했다.

“서울에서 마신 막걸리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일행의 평판은 또 한 번 일치했다. 맛에 대한 사람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닭갈비의 유래

닭갈비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초(初) 춘천 요선동(要仙洞)의 한 술집에서 안주 삼아서 닭의 갈빗살을 양념에 재워서 숯불에 구워먹은 것이 그 시초였다. 값이 싸고 양이 많아서 102보충대를 비롯한 군부대 장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값이 싸서 ‘서민 갈비’, ‘대학생 갈비’라고 불렸다.>

<본래 닭갈비는 양계장이 많던 홍천과 춘천에서 시작됐다. 최초로 발생된 춘천식은 숯불에 석쇠를 놓고 양념된 닭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춘천·홍천에서도 인기를 끌며 각종 야채와 사리를 넣어 양(量)을 늘리는 조리법은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숯불 불판보다 대량 조리가 용이한 원형 철판으로 바뀌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부터 철판으로 된 넓은 불판에 떡, 야채, 닭고기를 매운 양념에 볶아먹는 현재의 모습으로 조리 방식이 바뀌었다. 초기에는 글자 그대로 닭의 갈비뼈(肋骨)에 붙어있는 닭의 갈빗살을 썩둑썩둑 썰어서 숯불에 구워먹었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살코기가 더 많은 닭다리의 살을 쓰는 쪽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름은 닭갈비지만 정작 닭의 갈빗살은 들어있지 않은 음식으로 발전했다.>

음식문화는 자연환경·사회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와 함께 사람의 입맛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 갈비’, ‘대학생 갈비’로 시작된 닭갈비가 춘천을 넘어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인 음식문화로 발전함은 물론, 일본에서도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사진: 춘천의 노을)

멀리 노을이 물들어가고 있을 무렵 춘천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차량들의 정체로 더딘 흐름이었으나, 차 속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trot)’가 지루함을 달랬다.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세월이 고장 좀 나면 좋겠는데...아예 뒤로 돌려버리면 어떨까요? 10년 쯤요.”

“이왕이면 20년 쯤 돌려버리죠.”

농밀(濃密)한 대화 때문일까. 정체가 풀려 올림픽도로 입구에서부터 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탔다. 온몸에 스며든 닭갈비 냄새 때문인지 주변사람들의 눈총이 필자에게 집중되는 듯했다. 춘천 닭갈비와 함께한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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