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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까울리(高麗)’... 그리고, 日 에도(江戸) 막부시대 최초의 순교자들 이야기
일본 성녀(聖女) 오다 줄리아 이야기(3)- 순교의 시대
2016년 10월 04일 (화) 11:08:42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저의 논문은 앞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루이스 메디나(Juan G. Ruiz de Medina) 신부의 ‘머나먼 까울리(高麗)’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어떠한 자료보다도 그 당시(1566-1784)의 사실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줄리아의 기록도 팩트입니다.”

   
머나먼 까울리

도리쓰 료지(鳥津亮二·39)씨는 그가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오다 줄리아가 고즈시마에서 나와 일본 본토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루이스 메디나 신부의 고백을 제시했다.
 
<필자가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찾아낸 최후의 기록은 일본발신 1622년 2월 15일(元和 8·1·5)자 프란시스코 파체코 신부의 편지이다. 이 편지의 말미에 그 자신이 다음과 같이 추기하고 있다. '신앙 때문에 추방된 고려인 오다 줄리아는 지금 오사카에 있다'.>
 
도리쓰(鳥津)씨는 ‘머나먼 까울리(高麗)’의 271쪽을 펼치면서 필자에게 재차 설명했다. ‘머나먼 까울리(高麗)’는 어떤 책인가. 이 책에는 줄리아에 대한 글 10편이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책속에 담긴 조선의 이야기와 시대가 다르기는 하나 소설<침묵>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가톨릭 교회 전래의 기원...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
 
<16세기 격동의 동아시아. 미지의 왕국 까울리(高麗)에의 포교를 열망하는 선교사들에 대해서 이 국경은 강하게 닫혀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국가톨릭 교회 전래의 기원

이 책의 원제는 <한국가톨릭 교회 전래의 기원(1566-1784)>이다. 1986년 로마어와 스페인어로 간행돼 대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8년 일본어판이 나왔고, 그 이듬해 우리나라에서도 서강대출판부(외대 박철교수 譯)가  번역본을 냈다. 책의 내용 중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꼬라이(Corai)와 일본의 역사를 살펴볼 때 자신들은 꼬레(Core)라 부르고 중국인들은 까울리라 부르던 꼬라이 왕조로부터 온 사람들이 이 섬의 일부지역에 거주했음이 분명하다. 일본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바람이 좋은 날에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을 정도이다...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타국과 거래하기 이전, 중국인들과 교역하기 훨씬 이전부터 교류해온 최초의 이(異)민족이다. 간혹 꼬라이는 일본에 침입하여 전쟁을 하기도 했으며, 나중엔 오히려 정복을 당해 조공을 바치게 됐다.>

당시 유럽의 선교사들은 조선을 섬으로 간주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톨릭 탄압을 소재로 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소설 <침묵>은 ‘후미에(踏み絵)’로부터 시작된다. 후미에는 에도 막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성모마리아가 새겨진 금속이나 목재의 성화상을 밟고 지나가게 해서 신자를 색출했던 방법이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일본에서는 선교 활동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로마 교황청에서도 성직자들의 편지에 의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1587년 이래 히데요시가(秀吉)가 종래의 정책을 바꾸어 가톨릭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나가사키의 니시사카(西坂)에서 26명의 사제와 신도들이 화형(火刑)에 처해졌다. 또한, 각처에서 수많은 가톨릭 신도들이 쫓겨나고 고문을 받고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1614년 일본 내에 있는 모든 가톨릭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히데요시의 파테렌 추방령(伴天連 追放令)··· 야쓰시로(八代)의 순교자들-
 
천주교에 호감을 가졌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6월 19일. 규슈를 제압한 이후 하카다(博多)에서 황당한 명령을 내렸다. 선교사를 일본에서 몰아내는 파테렌 추방령(伴天連追放令/Pater:사제)이다. 고니시를 비롯해서 크리스천이 많은 규슈의 다이묘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신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기리스탄들의 나라에서 온 신부들이 악마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이 땅에 오는 것은 몹시 나쁜 일이다. 그들은 일본의 여러 영지에 와서 우리를 그들의 종파로 개종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신들과 부처들의 사원을 파괴하고 있다....그런 일은 나쁜 일이므로 나는 신부들이 일본 땅에 있지 말아야 한다고 정하는 바이다. 이 결정에 의해 20일 이내에 자신들의 일을 정리하고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일본 그리스도 교사).

   
야쓰시로 성당의 성모 마리아 상(像)

일본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것은 1549년 8월 15일이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와 코스메 데 토레스(Cosme de Tones) 신부,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mandes)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의 일본 공략은 끊임없이 진행됐다. ‘1549년부터 1643년까지 94년 동안 110명의 신부와 36명의 수사가 일본에 입국했다’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가시죠. 구마모토(熊本)현의 작은 도시 야쓰시로(八代)에 이에야스(家康) 시대 최초의 순교자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필자는 도리쓰 료지(鳥津亮二)씨의 안내를 받아서 이에야스(家康) 시대에 최초의 순교자들의 흔적을 찾았다. 순교(殉敎)란 무엇인가. 종교에 대한 갖은 압박과 박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야쓰시로(八代) 시내의 어느 한적한 곳에 세워진 성당. 성모마리아 상(像)아래 일본어로 씌어있는 구절이 특이했다.
 
천주의 성모/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소서
 
성당을 돌아 뒤편 정원으로 가자 하늘을 찌르는 듯한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비(碑)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碑)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구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비(碑)에는 1603년(慶長 8년) 12월 8일과 9일 순교한 사람의 명단 6명과 1606년 감옥에서 순교한 1명, 1609년 1월 11일 순교한 4명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 처형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필자는 성인(成人)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8세의 루비코, 12세의 토마스, 6세의 베드로가 참수된 이유에 대해서 도리쓰(鳥津)씨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대답이다.

   
순교자에 대해서 설명하는 도리쓰 씨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그저 부모님과 뜻을 같이한다는 말밖에. 그것이 그들이 참수당해야 했던 죄목(罪目)이었던 것입니다.”
 
(...때가되면 이 박해와 고난이 왜 저희의 운명에 주어지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날이 오겠지요.)
 
순교자의 비(碑)에 답이 있어...현재의 자유와 평화는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다
 
필자는 ‘순교자의 비(碑)’에 새겨진 글에서 답(答)을 찾았다.

   
아픈 사연이 새겨져 있는 순교자 비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비호아래 일본 유수의 크리스천 융성의 땅이 되었던 야쓰시로(八代)도,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유키나가(行長)의 실각에 의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지배의 땅이 되기에 이르렀고, 혹독한 박해의 시대를 맞았다. 전종자(轉宗者: 배교자)와 다른 번(藩)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많았으나, 이 땅에 머물러서 신앙을 관철하는 자도 있었다. 이들 중 지도자 수명이 체포되어 가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유키나가(行長)의 가신 2명과 그의 가족 4명, 선교사가 추방되어진 상황에서도 우도(宇土)에서 여전히 신도들의 곁에서 버팀목을 이어간 자비역(慈悲役) 3명과 그의 아들 2명, 합계 11명이 순교했다.
신의 가르침을 지키고자 각각의 시련을 감내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의 용감함과, 부인들의 두드러진 마음과 자세는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티 없이 맑은 세 명의 어린이들의 순교는 보고 있던 대군중의 혼(魂)을 흔들어 움직였고, 많은 전종자(轉宗者)들을 반성하게 했으며 신도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의 순교 100주년을 맞이해 이들의 유덕을 오래도록 기념함과 동시에 현재의 자유와 평화는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깊은 지하의 수맥(水脈)으로서 이 땅에 흐르는 순교자의 피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 이 비(碑)를 건립한다. 1990년 4월 吉日. 야쓰시로 가톨릭 교회>
 
필자는 이글을 읽고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아픔과 서러움, 그리고 종교를 위한 순교(殉敎)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까울리(高麗)와 일본 사이에는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희생과 아픈 사연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서러우면서도 의미있는 삶을 산 '오다 줄리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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