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편지를 받기 어렵다. 인터넷 시대라 e-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전하고, 아름다운 화면에 음악이 깔린 동영상까지 흘러 다니고 있어서다. 하지만, 편지(便紙)에는 애틋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필자는 오래 전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것도 스페인(Spain) 성당의 한 수녀님으로 부터 받았던 것이다. 우표가 여덟 장이나 붙은 편지 봉투-. 내용을 읽기 전에 봉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랬다.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까?'

수녀님의 편지

<장상인 대표님께! 저는 스페인의 '위로의 성모회'에서 25년간 봉헌의 삶을 살고 있는 수녀입니다. 장 대표님의 칼럼 '오다 줄리아'를 읽고서 반가운 나머지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오다 줄리아' 님은 제가 서울 양화진의 절두산(切頭山)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일본으로부터 그 분 묘지의 흙이 오고 비석이 세워졌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그 당시 일본에서 '줄리아' 님의 고해성사를 하신 '세스페데스' 신부님이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스페인의 톨레도(Toledo) 출신이십니다. 그의 기념관이 제가 살고 있는 곳과 인접해 있습니다. 언제 스페인에 오시면 제가 그곳을 안내하겠습니다..... 또한, 일본에 갈 기회가 된다면 그 분이 생을 마감하신 '고즈시마(神津島)'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고즈시마의 전경

편지를 읽은 필자의 가슴 속에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시간이 흐르자 심장의 박동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 만큼 쿵쾅거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느낌 일 것이다. 자신의 글을 읽고 거기에 답을 보내온다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우편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필자는 즉각 수녀님의 e-메일 주소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아직도 답이 없다. 성당에 다니는 주변의 신도들에게 물었다. '아마도 수녀님들이 외부와 쉽게 교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답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다 줄리아의 정보입니다."

고즈시마에 있는 '오다 줄리아'의 묘지

지난 해 12월 일본 후쿠오카 방문 시 필자로부터 '오다 줄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72)'씨가 일본 NHK에서 방영됐던 내용을 뒤늦게 보내온 또 하나의 편지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7월 12일. NHK의 <역사 비화(秘話) 히스토리>의 '천주교 탄압'에 대해 방송됐던 내용입니다. '오다 줄리아'는 히데요시(秀吉) 군(軍)의 첫 번째 출병(1592년, 임진왜란)시 전란 속에서 인질로 포로가 된 이(李)씨 조선 양반의 딸이라고 하지만, 탄생과 실명, 가족 등 자세한 것은 불명입니다.

'오다 줄리아'의 사연이 자세하게 적혀 있는 전망대

'줄리아'는 세례명, '오다'는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평양 근교에서 체포 · 연행 된 후, 천주교도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 인계돼 그의 양녀가 됐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가업이 본래 오사카(大阪)에서 약재상을 한 관계로 그녀 또한 약초에 대한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고니시(小西)가 처형된 후 집안의 몰락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측실의 시녀가 돼 슨푸성(駿府城)에서 살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줄리아'는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다른 시녀들이나 신하들을 천주교로 교화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천주교를 버리고, 측실이 되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1612년 금교령에 의해 추방 돼 이즈제도의 오시마(大島) · 하치죠지마(八藏島) · 고오즈시마(神津島)에 잇따라 유배됐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도 그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섬사람들의 생활에 헌신적으로 공헌했다고 합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오다 줄리아' 추모제를 알리는 현수막

필자는 스페인의 수녀님과 일본의 오츠보 씨가 보내온 편지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세스페데스' 신부가 '오다 줄리아'의 고해성사를 받았다는 사실과,

둘째, '오다 줄리아'의 죽음에 대한 다른 의견이 제시됐다는 사실이다.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세스페데스' 신부

'세스페데스'신부는 누구인가.

'세스페데스'신부는 1577년 일본에 건너와 포교활동을 하다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함께 서양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했던 인물이다. 1593년에 퇴각했다가 웅천성(熊川城)에 있던 천주교도인 일본군 장수 고니시(小西行長)로부터 종군신부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본관구장 코메즈(P.Comez)에 의해 파견돼 입국, 1년 6개월 동안 종군신부로 활동했다. 일본군 전도가 목적이어서 조선 사람들과의 접촉은 없었다. 1595년 일본으로 돌아간 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5만여 명의 조선 사람 가운데 2,000여 명을 천주교에 귀의시키고 세례를 받게 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조선에 들어와 2개월간 머물렀고, 일본에 돌아가 호소카와(細川忠興)의 후원으로 기타규슈의 고쿠라(小倉)에 교회를 세우고 포교활동을 하다가 일본에서 생을 마쳤다.

세월이 변해도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받은 편지를 계기로 지나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 요즈음 한일관계가 날씨와 반대로 냉각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는 일본 지도자들의 모습이 어색하고 구차해 보인다. 역사는 늘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