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현대 서산 농장을 견학했다. 필자가 허리를 다쳐서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았으나 오래전부터 잡힌 약속이기에 강행군을 했다.

길을 달리자 길목마다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푸르른 산과 들을 보면서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가 새삼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6월은 올해를 절반으로 꺾는 달이기에 세월의 빠름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때때로 차가 느린 흐름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처음 방문하는 발걸음이라서인지 짜증이 나질 않았다. 필자가 해외여행에 비해 국내 여행이 생소한 것도 크게 작용했을 듯싶다.

아산(峨山) 정주영 회장은 누가 뭐래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국 경제계의 거목(巨木)이다.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7년 현대그룹을 세웠고, 2001년 명예 회장의 직함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사무실이나 기념관에서 자주 눈에 띄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 사람'임에 틀림없다.

서산 간척지는 A지구와 B지구로 나뉜다. A지구로 조성된 땅이 1,935만평, B지구가 2,912만평이다. 그는 총 4,661만 평의 국토를 넓힌 셈이다.

정주영 회장은서산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특히, 최종 물막이 공사 시 급격한 물살로 인해 마감 공사가 번번이 실패했을 때 폐(廢) 유조선을 가라 앉혀서 급류를 막고 방조제 공사를 성공시켰다.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유명해진 일화는 아직도 건설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이야기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1979년 8월 24일에 시작된 서산 간척지는 1986년 5월 1일 시범 영농을 개시했으며, 1995년 8월 14일 공사기간 15년 3개월이라는 대역사(大役事)를 마감했다.

'이토록 엄청난 일을 그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정주영 회장은 타고난 창의력과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신화를 창조했다.

대그룹의 회장으로 성공했지만 그는 근검한 생활 태도를 일지 않았으며, 평생을 일하는 보람으로 살았다.

필자는 그가 공사 기간 중 기거했던 단층집 숙소를 돌아봤다. 소박한 시골 노인의 집을 연상케 하는 집기가 단아하게 진열돼 있었다.

서산농장에서 일하면서 입던 평상복의 리스트는 스웨터 4점, 모자 3점, 가디건 10점, 와이셔츠 4점, 티셔츠 6점, 작업복(하복 5벌, 동복 1벌), 여름 이불 3채, 양말 29켤레, 장갑 1켤레가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세계적인 재벌 회장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유품들이었다. 기념관 옆에 세워진 자동차도 주인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다 극복할 수가 있다."

그의 업적을 담은 6분짜리의 짧은 영상물도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평소 자주 되뇌던 말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삶은 하나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슬기가 있어야 한다. 기업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각인된 동상 앞에 목례를 올리고 현대 서산 농장을 떠났다. 간월호 쪽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창공을 돌면서 힘찬 전진을 이어갔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이 다시금 뇌리 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