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인 윤창중 씨의 성추행 의혹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외교가 온통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재미교포 인턴 여대생에 대해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불거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이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일정 도중에 일어난 사태라는 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의 ‘입'이 워싱턴 현지에서 전격 경질돼야 했던 초유의 사태 자체로서 심각성을 말해줍니다. 더 나아가 늑장보고 사태까지 겹침으로써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데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사과 발표까지 잇따랐습니다. 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다졌던 양국의 우의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 초청받았던 최고의 예우가 순식간에 무색해졌습니다. 리셉션장에서 곱게 차려입었던 한복 옷고름에도 흙탕물이 끼얹어진 셈입니다.

물론, 사건의 내용이 피해자 진술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남녀 간의 성희롱 문제는 일단 사건화가 되고 나면 가해자로 지목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기 마련입니다.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마녀사냥식으로 여론이 쏠리기 십상이어서 억울하게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경우도 없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허락없이 엉덩이를 만졌다”는 게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고 보면 그가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 전 대변인 본인도 상대방의 신체를 건드렸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허리를 만졌다는 것이 피해자의 진술과 어긋나는 부분입니다. 그조차도 성적 의도로 만진 게 아니라 “격려차 한 차례 툭 친 것”이라는 해명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에 대해 그 자신도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각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불찰임을 인정했습니다. 그것으로 부적절한 처신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은, 격려를 하려고 허리를 건드렸다는 해명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평소에도 남을 격려하기 위해 허리를 만졌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것을 ‘문화적 차이’로 돌리는 것은 옹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직책과 임무를 감안한다면 그날 밤중에 인턴 직원과 별도로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과 일본의 과거사 부인 및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반도 정세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마련됐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했습니다. 국내의 정상급 최고경영자들이 ‘코리아 세일즈’를 위해 동행해야 했을 만큼 경제도 어려운 국면입니다.

설사 인턴 여직원이 먼저 술을 사달라고 졸랐어도 뿌리치는 게 온당한 처사였습니다. 오해를 없애려고 술자리에 운전기사를 동석시켰다고 해서 문제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운전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던 처지도 아닐 것입니다. 특히 다음날 새벽까지 그가 상당히 취해 있었다는 증언이 주변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보면 몇마디 해명으로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공직자들의 성희롱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로 부각되는 상황입니다. 여지없이 옷을 벗거나 징계의 대상이 됩니다. 이로 인해 각 기관이나 직장마다 성희롱 예방 지침까지 시달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최측근 참모로서 너무도 가벼운 처신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가방도 못 챙기고 서둘러 귀국한 부분이 그 하나입니다. 현지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것을 알아채고 수사를 피해 줄행랑친 것이 사실이라면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에 대해 “이남기 수석의 지시를 받고 귀국했다”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피해자인 인턴 여직원과 그 주변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사나흘 정도 늦출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최소한 박 대통령의 순방 일정이 끝나기를 기다려 문제를 삼았더라면 나라의 체면이 이렇게 깎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윤 전 대변인이 귀국을 서두르지 않고 현지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더라도 모양은 더욱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해자의 절박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일정이 아직 진행중인 상황에서 사건이 접수되면 나머지 행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교포의 입장에서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미국 경찰이라면, 늦춰서 신고를 했다고 해서 사건 처리에 소홀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교포들과의 ‘문화적 차이’라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윤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처음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될 때부터 왈가불가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태까지 미리 내다보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아쉬움이 더욱 커집니다. 국제적으로 대문짝 만한 헤드라인으로 망신을 당하며 국격(國格)이 찢겨진 마당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한미 어느 쪽에서 수사가 이뤄지든 조속히 마무리되어 국민들의 뇌리에서 하루빨리 잊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http://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