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뭇잎과 꽃이 시드는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Paul Marie Verlaine)은 <가을의 노래>에서 "가을날 바이올린의 기나긴 흐느낌이 가슴속에 파고들어 마음 설레고 또한 쓸쓸하다"고 읊었다. 뜨거웠던 8월의 폭염도,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던 9월의 폭우도 뒷걸음치고 어느새 하늘 청명한 10월이 열렸다. 스치는 바람결에서 가을의 찬 공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뜨거운 대결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건설의 M&A(인수합병)를 위해서 맞서는 사람들이다. 시아주버니(媤兄)인 현대자동차 그룹 정몽구회장과 제수(弟嫂)인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불꽃 튀기는 한 판 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시아주버니와 제수는 백 년 손'이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시아주버니와 제수 사이는 본디 '거리가 멀고 서먹한 사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는 시집 온 새댁이 시아주버니와 자리를 같이 한다는 자체가 어렵고 부자연스러웠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상황이 다르다. 기업경영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그동안 시중에 떠돌아다니기만 했을 뿐 시아주버니와 제수의 본격적인 대결은 지난 달 24일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현대건설 보유주식 3,899만주(34.88%)를 매각한다고 공고했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상호는 고 정주영 회장이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현대'를 지향해서 발전된 '미래'를 살아보자는 의도에서 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현대토건사'라는 건설회사를 만들었으며, 1950년 1월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사'를 합병하여 오늘의 '현대건설'을 출범시켰다. 고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았으나 '현대건설'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뚝심이 있었다. 더불어 그는 건설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그가 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책에 이러한 대목이 있다.

"건설업은 중요한 업종이다. 건설업은 각종 산업시설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주의 생산 시설에서부터 모든 간접시설 분야에 이르기 까지 수행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간접 또는 직접으로 우리의 생활문화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건설업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는 피를 끓게 한 20세기 최대의 공사"라고 회고 했다. 공사금액이 무려 9억3000만 달러나 되었기 때문이다. 1976년의 일이다. 참으로 피가 끓을 만한 일이다.
 현대건설은 한 때 뼈아픈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명실 공히 우리나라 건설업을 이끌고 있는 시공능력 평가 1위의 회사다. 자산규모가 8조 4934억 원이고, 2010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외 건설시장에서 획득한 수주잔고가 52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채권단은 10월 1일 입찰참가의향서(LOI)를 접수하여 오는 11월 12일까지 본 입찰을 마치며, 연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한다는 일정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간의 2파전, 즉 시아주버니(媤兄)와 제수(弟嫂)의 격렬한 대결이다. 일반인들의 단순 논리로는 가족 간의 합의 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長者)로서 그룹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현정은 회장도 '원래 주인이 현대건설을 다시 찾아서 그룹의 명예를 복원시키겠다'는 결의가 야물차다.

기업의 M&A(인수합병)에서는 높은 가격을 쓰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금물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승자의 저주(詛呪)'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정통성 계승'이나 '명예회복' 보다는 기업 경영을 위한 상식의 선에 눈을 맞추라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1위의 현대건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보다 튼튼하고, 미래지향적인 회사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를 지향해서 발전된 '미래'를 살자"는 고 정주영 회장의 뜻을 이어받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