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文庫)는 본디 '서적을 수거하는 창고(倉庫)나 서고(書庫)' 혹은 '책이나 장부 등 신변의 물건들을 넣어 두는 작은 상자'라는 말에 근본을 두고 있었으나 그 의미가 변화되어 장서나 도서관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일반대중에게 책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저가보급본총서(叢書)를 문고로 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고판은 일본이 아주 발달하여 이와나미(岩波)문고 · 신초(新潮) 문고가 유명하고, 우리나라는 을유문고 · 정음문고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고의 이름으로 30여 년 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서점이 있다. 바로 교보문고다. 교보문고는 1981년 서울의 심장부인 종로1가에 개점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서점이다. 이 서점은 '국민교육진흥의 실천적 구현, 독서인구 저변확대를 통한 국민 정신문화 형성, 사회적 기능을 살린 문화 공간 창출'이라는 창립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교보문고는 창립 이념에 걸맞게 국민의 정신문화 형성과 문화 공간 창출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본다. 그런데 이 서점이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다. 광화문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들러서 필요한 서적이나 신간 서적들을 살펴보던 필자도 지난 5개월간은 사뭇 허전 했었다. 드디어 이 서점이 8월의 끝자락인 지난 달 27일 새로이 문을 열었다. 이 서점이 필자의 휴대폰으로 여러 차례 메시지를 보내 왔기에 궁금증이 더해서 점심 식사 후 교보문고로 발길을 옮겼다. 프레스 센터 앞을 지날 무렵 소나기가 후드득 쏟아져 단숨에 교보문고에 다 달았다. 리노베이션 오픈(Renovation Open)! 너무나 반가웠다. 지난 5개월의 휴점이 참으로 길었기 때문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외국 서적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기노쿠니야(紀伊國屋)' 서점 코너가 색달랐다. 이 '기노쿠니야'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서점이다. 현재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베스트셀러의 책들이 교보문고에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동시적인 문화 교류를 모색하려는 취지 인듯했다. 외국 서적 코너를 지나자 고객들의 긴 줄이 통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소설가 박완서 씨의 팬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에는 빨갛고 예쁜 표지의 박완서 씨의 신간 서적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들고 있었다. 80의 나이에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정성스럽게 사인을 하는 박완서 작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박완서 씨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못 가본 길에 대한 새삼스러운 미련은 노망인가, 집념인가. 올해가 또 경인년이기 때문인가........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古屋)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의 모습에서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은 찾을 수 없었다. 사인하는 손놀림이나 독자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활기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박완서 씨가 '성장을 멈췄다'는 스무 살은 바로 6·25가 나던 1950년을 말한다.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나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올해가 60년 만의 그 경인년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생전에 또 전쟁을 겪게 될 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아무튼, 새로 단장한 교보문고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총면적 2,700여 평의 넓은 매장에는 50만 종 100만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새 교보문고는 일일 7-8만 여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수리하기 전의 배가 넘는 인원이다. 물론, 이 인원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희망적이다. 독서인구가 그토록 많다는 것이다.

 홍보담당 진명균 씨는 "새 교보문고의 키워드(Key Word)는 소통하는 미래형 서점"이라면서 "책읽기의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고 배움 아카데미·책읽기 마법·책공방 등을 통해 고객맞춤 서비스를 실현했으며, 첨단 디지털기기의 구축·컨베이어시스템 등으로 21세기형 서점의 역할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포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고 했다.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자리에 제법 큰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가 아물면 곧바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 자리할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광화문 교보문고가 초심을 유지하며 독서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