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9월까지 계속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밤잠까지 설쳐야 했던 무더운 8월이었기 때문이다. 더위 못지않은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가짜다>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올 초에 '헤럴드경제'가 내놓은 책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탐욕의 실체와 허상을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막막함과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주변의 스쳐 지나온 것들을 되돌아보고,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나는 가짜다>에는 김주영, 마광수, 안정효, 도종환 등 유명작가 40여 명의 자화상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있다. 만화속 주인공 같은 얼굴, 폭탄 머리, 뚱한 얼굴 등 다양한 캐리커처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 중에서 필자는 소설가 김주영의 '내 얼굴 나도 모른다'는 글과 그림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손녀가 그린 것 같은 커다란 두 눈과 확실한 눈썹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탐욕스럽게 살아온 한평생....장차 두 눈 부릅뜨고 분수와 능력에 맞게 살라는 교훈 같아 가슴이 쓰리다." 그의 손녀가 그린 할아버지(김주영) 얼굴에 대한 자신의 평가다.

 김주영 씨는 신문사가 자화상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욕심이 자신의 기량보다 훨씬 앞섰기 때문이란다. 자기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초등학교 1학년생인 손녀가 그려준 자화상을 실었다. 그는 그 자화상에도 자신의 허상이 낱낱이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언제 어디서나 내가 가진 능력이나 기량 이상의 것을 탐욕스럽게 기대해 왔었다.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공연히 주위 사람들을 서슴없이 폄하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아가서 세상을 향하여 삿대질하는 일도 중단하지 않았다."

참으로 겸손한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너무나 후하게 점수 매긴다. 탐욕이 기량보다 앞서서 일 것이다. 설전(舌戰)은 끝났으나 청문회의 후유증이 9월 더위처럼 길어질 것 같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시선이 불처럼 뜨겁기 때문이다.

다운 계약서, 위장 전입, 쪽방, 거짓말,.... 어느 것 하나 장관을 하고, 총리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들이다. 과거에 부동산투기꾼들이 상습적으로 자행해온 탈법 행위들이 공직자들의 전유물이 된듯하다. 기량이 안 되면 스스로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걸어온 삶이 이토록 오염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거짓말을 감추려고 하면 좀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네. 인생에서도요."
 15년 전에 연출했던 무대가 가짜였다는 것을 감추려고 친구를 살해한 발레리나를 추궁하여 끝내 자백을 받아내는 형사와 범인의 대화 내용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 52)'의 소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의 끝부분이다. 작가는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발 바꾸기나 거짓말 보다는 "나는 가짜다"고 얘기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에게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하려는 것일까? 요즈음 우리의 주변에는 사실을 진솔하게 밝히려는 사람보다는 감추려드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띤다.

오세영(1942- ) 시인의 시 <9월>을 떠올리며 9월에 대한 기대를 걸어본다. '코스모스 꽃잎에서 묻어나는 하늘냄새'를 맡으면서 시름을 달래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9월의 하늘도 새롭게 열릴 것 같다.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