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장상인

8월은 광복 65주년과 한일병합 100주년의 달이다. 일본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지난 10일 '1910년 8월 29일 강제병합조약 발효로 시작된 한국의 식민지배가 강제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식민지배의 강제성 인정'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10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8월 11일자 사설에서 간(菅) 총리의 담화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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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겨 모국어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고, 전쟁터나 공장에 동원되었다....... 그런 굴욕적이고 비통한 체험을 조선 사람들에게 강요한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이 이번 달에 100년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수상은 어제 발표한 담화로 '통절한 반성(痛切な反省)과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표명했다. 수상 담화로서는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정치적·군사적 배경아래 당시의 한국 사람들의 뜻에 반해 행해졌다'라고 말했다. '민족의 자존심을 깊게 손상시킬 수 있었다'라고도 말해, 한국민의 심정에 마음을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강제성 인정이나 사죄의 말'은 민간인들이 훨씬 먼저 행동으로 옮겼다. 지난 79년 일본의 민간인들에 의해 세워진 '나가사키(長崎) 원폭희생자 추도비'에 새겨진 글이 본보기다. 이 글은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식민지를 만들었으며, 강제노동 끝에 원폭을 맞아 죽게 한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일갈(一喝)했다. 비문에 새겨진 글을 일부 옮겨본다.

 <1910(明治43)년 8월29일, 일본정부는 '일한병합조약'을 공포하여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둠으로써, 자유와 인권, 귀중한 토지마저 빼앗기여 생활의 수단을 잃은 많은 조선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 민족을 강제로 끌고 와 학대혹사하며 강제노동 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을 맞아 죽게 한 전쟁 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철패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여 마지않는다.>
 
 일본 나가사키(長崎) 평화의 공원아래 자리한 이 비석은 1979년 8월 9일 일본인들이 모금을 하여 세웠다. 그 당시 나가사키 시에만 3만 명을 상회하는 조선인이 살았고, 이중 2만 명이 원폭 피해를 입었으며 1만 명이 폭사(爆死)했다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추도비(追悼碑)다. 정치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순수한 민간인들이 해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정치적으로 우회를 거듭하다 보면 사과에 이르기까지 수 백 년이 걸릴 수 있다. 이러한 우회적인 행동 요소를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우회적인 언어의 유희(遊戱)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의 표현이 바로 그렇다. 부가적인 설명이 없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솔직한 한마디가 더욱 설득력이 있을 듯싶다.

 특히, '오와비(おわび)'라는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순수 일본어로 '가볍게 미안하다'는 의미에서부터 '깊이 사죄한다'는 뜻까지 두루두루 쓰이는 말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무라야마 담화(1995)를 비롯해 줄기차게 '오와비'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는 결국 강제병합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의미상으로 같은 '사죄'가 한자어로 '샤자이(謝罪)'라는 표현하는 것은 법적인 책임까지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반환'이 아니라 '인도'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필자의 오랜 지인(知人)이자 인생의 선배로 통하는 일본의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 69/ 전 언론인)' 씨는 "오늘날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일본의 한반도 통치는 침략(侵略)이며, 성숙한 인류의 현재적 사고(思考)로서는 '침략은 범죄다'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상식이다"고 했다. 민간인의 생각이 훨씬 앞서고 있는 대목이다.'오와비(おわび)'에서  '샤자이(謝罪)'까지 가려면 또 한 번의 10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이래저래 8월의 무더위는 그 열기(熱氣)를 더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