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지구촌을 달구며 밤잠을 설치게 했던 남아공 월드컵 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점쟁이 문어, 펠레의 저주 등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한 가운데 결국 영광은 스페인에게 돌아갔다. 스페인은 지난 12일 결승전에서 오렌지 군단 네델란드를 1:0으로 누르고 세계 제1의 챔피언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사상 최초의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스페인은 '무적함대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지구촌의 구경꾼들은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빛나는 아폴로 하늘 높이/ 말을 달리는 그 사이에/ 영원한 삶을 얻으시라./ 그대의 용맹 떨칠 수 있게/ 그대의 조국은 훌륭하고/ 그대의 작자는 유래 없노라."
 '아마디스 데 가울라'가 '돈키호테'에게 부치는 시의 일부다. 스페인은 바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Cervantes Saavedra, Miguel de/1547-1616)의 나라이자, 20세기 대표 화가인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1973)가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이제 축구를 통해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스페인의 우승은 '현란한 개인기 보다는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한 실리축구가 돋보였다'고 한다. 스페인이 7경기 동안 8골의 득점을 올린 것도, 실점이 2골 뿐이었다는 점도 수비력이 견고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착실한 득점을 통해서 차곡차곡 승리의 길을 다졌던 것이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서 기업이나 국가 경영에 있어서도 탄탄한 조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자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조직 내의 화합이 승리의 밑거름이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그동안 스페인은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문제는 스타 선수들의 팀플레이 부족과 고질적인 지역감정이었다고 한다. 안달루시아, 카탈루냐, 바스크 지역으로 나뉜 스페인의 지역감정 문제는 선수들에게도 커다란 장애요인이었다. 지난 세월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심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총대를 멨다. 그는 2008-2009시즌 스페인 프로축구 사상 첫 3관왕을 달성했던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 팀의 판을 짰다.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한 스페인 대표 선수 23명 중 바르셀로나 소속이 7명이나 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와 감독 생활을 했던 '델 보스케' 감독은 "대표 팀은 스페인"이라는 명제 아래 뭉치도록 했다. 마침내 그는 스페인 축구의 '80년 한(恨)'을 풀었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쾌거 중의 쾌거다. 스페인의 이번 대회 우승은 선수들은 물론, 자국 구경꾼들의 뿌리 깊은 지역 갈등 해소에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한다. 이선영의 장편소설 <천년의 침묵>에 나오는 운동경기와 관련한 현자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올림픽을 찾아 모여든 인파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 경기에 참가하고 승리를 하기 위해 온 운동선수들. 둘째, 경기를 구경하러 온 관중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장사치들이 있다.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들은 어떤 부류이겠는가?" 현자의 물음에 카리톤이 담담한 모습으로 일어나서 대답한다.

 "첫 번째 부류인 운동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올림픽 경기의 꽃이며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현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부류는 구경꾼이다. 구경꾼들은 운동선수뿐 아니라 경기장의 모습과 주변의 자연경관 및 장사치들의 행위까지 모두 관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란다.

"구경꾼들이야말로 상황을 객관화시키고 분석하는 철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구경꾼들은 올림픽 경기장에 운집한 관객으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 산재한 구경꾼들도 큰 역할을 담당하는 부류임에 틀림없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구경꾼들을 설득시키고 이끌어가기 위한 실질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구경꾼들의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