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이 옳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이 수용하지 않으면 무리할 수는 없다"
 지난 9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나 개인이나 무엇을 '새롭게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인식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롭게 바꾸는 것'을 '개혁(innovation)'이라고 하는데, 그 개혁에는 '확산(diffusion)'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개혁은 개인이나 집단이 '새로운 것'이라고 지각하는 사상이나 물건 등을 의미한다. 확산은 개혁이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서 시간을 두고 한 사회체계의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되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개혁 확산'의 전문가인  에버렛 M 로저스(Everett M, Rogers) 미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쓴 책 '개혁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 연세대 김영석 교수 역)'에 들어 있는 개혁과 확산의 정의를 통해서 요즈음 우리의 상황을 읽어 본다. 로저스(Rogers) 교수는 '개혁이 한 사회에 골고루 전파되기 위해서는 설득의도를 가진 주체가 설득 대상인 집단 혹은, 사회의 구조적 측면을 올바르게 파악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했다. 그것도 시간을 두고 말이다. "

 로저스(Rogers) 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공군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전개 시절 가족계획 보급운동을 펼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그가 각종 경험을 토대로 제시한 '개혁의 확산' 이론은 한 사회나 한 조직에 있어서 새로운 개혁이 어떤 형태로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정제된 설득과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로저스(Rogers)교수가 제시한 개혁확산에 대한 사례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개혁의 확산'에 서술된 사례의 내용은 페루의 보건당국이 전염병을 예방하여 촌락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그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제시된 '개혁적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 사례를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페루의 해안 지대에 위치한 200가구 정도의 농촌인 '로스 몰리나스(Los Molinas)'에 파견된 보건운동원 넬리다(Nelida)는 의사를 초청하여 물 끓여 마시기에 대한 강연회는 물론, 수 십 차례 씩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주민들을 설득시켰다. 무려 2년여 동안이나 반복되었던 설득 작전이었다. 하지만, 전염병 예방에 대한 개혁의 확산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도대체 사람까지도 물에 빠져 죽는데 어떻게 미생물이 물속에서 빠져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인가요?"
주민들이 그 개혁 자체를 '문화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로저스 교수는 전염병 예방을 위한 넬리다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넬리다는 대상에 초점(client-oriented)'을 두기 보다는 개혁에 초점(innovation-oriented)을 두었다. 그녀는 마을 주부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들의 필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설득시도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설득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세균 학설로만 일방적으로 접근했던 넬리다의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개혁의 확산에는 몇 가지 주요 요소가 있다. 시간을 두고, 사회 체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특정 채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 선거 참패 이후 우리 정부나 한나라당에서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4대강이나 세종시 문제는 바로 사회체계의 구성원 사이에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의 고질적 병폐인 '빨리빨리' 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