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주변을 돌아보면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시(詩) 읽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시는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바쁘고 삭막한 현실은 시와의 거리를 떼어 놓는다.

 학술적인 개념으로의 시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문학'이다. 감정이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의식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이 시에 대한 정의를 내려왔다. 하지만, 뚜렷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장르임에 틀림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표현하는 언어적 기법이 다르다는 얘기다. 일찍이 엘리어트(T.S.Eliot)는 "시에 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고 했다. 이유인즉, 관점과 방법에 따라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는 허드슨(K.H.Hudson)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시의 언어적 묘사에는 바로 '인생의 해석'이 들어있어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시에 대한 영화가 개봉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시를 통해서 세상을 조명하고 인생을 해석했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요동치는 물살이 지나가더니 잔잔한 강물이 흐른다. 강위에 콘크리트 다리가 걸쳐있고, 다리건너 멀리 높은 산이 서 있다. 강가의 갈대밭에서 아이들이 노닌다. 그리고, 한 소년이 허공을 바라보다가 강물을 타고 떠내려 오는 하얀 물체에 눈을 맞춘다. 그 물체는 다름 아닌 소녀의 시체다. 시체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 시(poetry)가 나타난다.

이어서 앰블런스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여인의 울부짖음이 흐르고, 병원 대기실- 휴대폰 소리와 함께 주인공 양미자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16년 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유명배우 윤정희다.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리던 윤정희(본명: 손미자 ? 66)-.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에 출연하여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날렸던 그녀가 세월의 흐름을 잔뜩 먹음은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래도 청순한 이미지는 옛 그대로 녹아있었고, "내가 웃으면 나한테 다 뾰-옹 갔어요"의 철부지 소녀 같은 대사는 영화 속이 아닌 현실의 이미지를 뿜어내었다.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주인공 양미자는 대화가 단절된 외손자를 키우면서 시(詩)를 써보고 싶은 욕망에 문화 센터를 찾는다.
 시란 무엇일까?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시는 보는 것이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가르치는 김용탁 선생은 <섬진강>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었다.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영화 <시>는 단순하면서도 강한 흡인력을 내재하고 있었다. 양미자라는 평범한 할머니를 통해서 세상의 삶을 새롭게 그렸다.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강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여섯 아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진 억울한 소녀의 세례명을 제목으로 양미자 할머니가 쓴 시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작>는 영화의 끝부분에서 죽은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강물 따라 덧없이 흘렀다.

"그곳은 얼마나 적막 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유월- 올 한해도 어느덧 반 토막 밖에 남지 않았다. 야단스럽던 선거전도 결판이 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무에 매진을 할 차례다. 건설업체들의 강한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도 자자하다. 감정에 치우친 주관적인 결정이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기업경영은 시(詩)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