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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동행'

2010년 05월 25일 (화) 17:04:01

발행인장상인

renews@renews.co.kr

"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 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회사의 회식이나 개인적 모임에서 노래방에 가면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 최성수의 '동행'이다. '누가 나와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따뜻한 동행이 될까?
어린이 날인 지난 5일. 여러 신문의 사회면 기사는 뉴질랜드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가족의 안타까운 동행(?)을 길게 실었다. <세 모녀 자살...달려온 남편도 '절망의 동행'>이라는 제목에서 기가 막히도록 난처하고 서러운 사연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자살한 세 모녀의 기막힌 서러운 사연은 이러하다. 세 모녀는 2002년부터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지 시내 주택가에서 살았고, 두 딸은 시내에 있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생활비와 학비는 남편 백씨가 정기적으로 보내 주었다. 이 들은 지난 8년 동안 소위 '기러기 가족'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남편 백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 자녀들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제대로 보내주지 못했다. 문제의 발단은 결국 경제적인 이유다. 집세가 연체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다. 어머니와 두 딸은 집을 나와 거리로 내몰릴 상황까지 치달았다. '서울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 그래서 가족들을 모른 채한다'는 헛소문도 구름처럼 떠돌아 다녔다. 결국, 세 모녀는 극단의 길을 택했다.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남편 백씨는 급거 뉴질랜드로 날았고, 아내와 딸들의 장례식 날 끝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신문 기사대로 '절망의 동행'이다. 누구를 탓 할 것인가. 하소연할 상대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요소를 인지할 수 있다. 하나는 '기러기 가족'이 늘어나는 사회 적 현실이며, 또 하나는 인명 경시 풍조가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부부애가 두텁다'는 것을 원앙새의 사랑에 비유한다. 그러나,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원앙새 보다는 기러기가 몇 수 위라고 한다. 그래서 전통혼례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의식이 있었다. 더욱이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돌보는 새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모범적인 새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러기 아빠', '기러기 가족'이라는 말은 어찌해서 생겨났을까? 가을 하늘 기러기들이 줄을 맞춰서 날아가는 것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리고, 기러기는 먼 거리를 날아가 새끼의 먹이를 구해 온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는 자녀교육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쓸쓸한 아버지를 기러기에 비유한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귀한 생명을 너무 쉽게 버리는 요즈음의 풍조가 걱정스럽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불명예도 고통스럽다. 더구나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닌가. 5일은 '어린이 날'이요, 8일은 '어버이 날'이며, 15일은 스승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또한 5월은 모든 생명체가 삶을 갈망하며 새롭게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그런데 고귀한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는 죄악 중의 죄악이다.

프랑스의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1984)' 교수는 <죽음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난처할 정도로 품위 없는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 죽음은 지나치게 격한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난처할 정도로 품위 없는 죽음은 곧 받아들일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뉴질랜드 기러기 가족의 죽음은 참으로 당황스러우면서 충격적이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죽음이다. 필자가 이 들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이러한 죽음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와 국제적 감각을 키우기 위해 현지화(localization)를 서두르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좋으나 '가정'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놓쳐버리는 어린아이들의 조기 유학은 득(得)보다 실(失)이 클 수가 있다. 따뜻한 가정은 국제적 인물을 키우기 위한 원천(源泉)이기 때문이다.
이역만리 이국(異國)땅에서 하늘로 동행한 이 '기러기 가족'은 지금 노랫말과 같은 '따뜻한 동행'을 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절망의 동행'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