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을 맞아 생기를 주네.....동틀 무렵이면 보이리/ 그 붉게 젖은 곳에/ 비단 고을 부럽지 않은 온 천지의 꽃, 꽃, 꽃"
당나라 현종 시대에 태어나 시를 통해 예술의 완숙미를 이룩한 시성(詩聖) 두보(712-770)의 시 '봄비 예찬'의 일부다. 차가운 바람 따라 오락가락하는 봄비 속에 어느덧 오월이 다가왔다. 두보의 시구(詩句)대로 '온 천지의 꽃, 꽃, 꽃'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봄을 기다렸던 것일까?
"오늘은 일찍 들어오세요. 좋아하는 별식을 준비할게요."
필자는 평소와 다른 아내의 종용(?)에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서 귀가를 서둘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궁금증이 확 풀렸다. 봄나물 향기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두릅나물이었다. 식탁 위에 수북이 놓인 두릅나물의 향기가 '길 잃은 봄'을 바로 세운 듯 했다.
'이제는 정말 봄이다. 꽃, 꽃, 꽃향기 속에 봄나물까지 모습을 드러냈으니....'
봄인지 겨울인지 구분도 안 될 만큼 혼란스러운 계절이건만, 그래도 봄나물은 어김없이 식탁을 찾아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두릅나물은 두릅나무에서 막 싹을 튼 새순을 말한다. 목말채 · 모두채라고도 하는 이 두릅나물은 약간 씁쓸하면서 독특한 향(香)을 내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활엽수인 두릅나무(Aralia elata)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으며, 이파리의 모양은 깃과 같은 겹잎이다. 새순은 식용 나물로 인기가 있고, 나무의 껍질과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산기슭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사할린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두릅나무 과는 전 세계에 65속 80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두릅나무, 오갈피나무, 황칠나무, 엄나무 등 8속 14종이 분포한다고 한다.

 두릅나무의 학명을 'Japanese Angelic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도 그만큼 이 나무가 많다는 증거다. 두릅나무의 새순 나물을 일본에서는 명일엽(明日葉: 아시타바)이라고 한다. '오늘 따도 내일 싹이 튼다'고 말할 만큼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일엽(明日葉)은 도쿄로부터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이즈제도(伊豆諸島)에서 많이 자생한다. 일본열도는 3,5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東京) 주변에도 섬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섬이 이즈(伊豆) 제도다. 이곳에는 7개의 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7개의 섬을 오오시마(大島), 도시마(利島), 니이지마(新島), 고우즈시마(神津島), 미야케지마(三宅島), 미쿠라지마(御藏島), 하치죠우지마(八丈島)라고 부른다. 이즈 제도는 임진왜란 때 잡혀간 성녀(聖女) '오다 줄리아'가 귀향을 갔던 섬나라이기도 하다. '오다 줄리아'는 오오시마(大島), 니이지마(新島)를 거쳐서 고우즈시마(神津島)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섬에서는 매년 5월 세 번째 일요일에 제(祭)가 열린다.

그녀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필자는 지난해에 '오다 줄리아' 제(祭)에 참가한 적이 있다. 행사 참가 후 고우즈시마(神津島)의 민박집(梅田莊)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래층 식당 방으로 모여 들었다. 평소의 복장으로 밥상 앞에 앉은 사람도 있었지만, 온천장 같은 유카타(浴衣) 차림의 손님들도 제법 있었다. 저녁 식사는 삼삼오오 편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식단은 섬의 특산물인 생선과 나물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덴죠우야마(天上山: 572m)에서 나는 산나물 두릅이 많이 나왔다. 다음날 숙박객들은 민박집에서 마련한 두릅나물을 한 보따리씩 안고 돌아갔다.

"줄리아님의 선물입니다."
'오다 줄리아'는 이 섬에서 약초를 캐어 우매한 섬사람들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두릅나무의 껍질과 뿌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두릅나물의 독특한 향을 낮추기 위해 버터, 마요네즈 등으로 버무리는 조리법이 취해진다. 특히, 이즈제도(伊豆諸島)에서는 동백기름으로 튀긴 두릅 튀김이 명물로 손꼽힌다. 이즈(伊豆)에서는 농협이나 슈퍼의 매장에서 두릅이 건강식품으로 연중 판매되고 있다. 건강식품 뿐 만이 아니라 두릅으로 만든 케이크, 소바, 소주, 차, 아이스크림 등이 인기가 있다. 봄나물 두릅에는 이처럼 이런 저런 사연이 많다.
"친정 올케가 해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는 봄 선물입니다." 아내의 말에 필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릅나물 향기 때문일까? 또 다른 봄이 기다려진다. 이 봄이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