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주목됐던 대주단 협약이 지지부진하다. 지금까지 고작 29개 건설사가 대주단 협약에 가입 신청을 했다고 한다. 100대 건설사 대부분이 참여할 것이라는 대주단의 예상과 달리 건설업계는 협약 가입에 소극적이다. 

200대, 300대 건설사까지 가입대상을 확대했지만 사정을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가입 신청뿐 아니라 문의전화도 없다”며 건설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건설업계는 추가적인 정부 지원을 기다리는 눈치가 역력하다. 대주단 가입만으로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상당수 건설업체가 버티는 걸 보면 뭐라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국책연구원에선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대주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유동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면에는 건설사 CEO 출신인 MB의 정부가 건설업을 살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깔려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국에 미분양만 25만여 가구가 쌓여있는데 건설업계가 이렇게 배짱을 부리기 어렵다.

채권단과 정부도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모양이다. 정부는 채권단과 건설업계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고, 채권단은 부실 규모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보다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모양이다.

당초 100대 건설사중에 20여개는 대주단 협약을 통해 퇴출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건설업체가 대주단 협약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퇴출 리스트차 만들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정부와 은행권이 부실 건설사의 부도를 막아주는 바람에 멀쩡한 건설사들까지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은 늦춰지고만 있다. 연내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는 이미 물 건너 갔고, 지금 분위기로선 그 시점을 예상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건설업계의 신용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유동성 리스크는 높아만 졌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할 모양이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조만간 미분양 급증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가능성을 들어 상당수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것이라고 한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건설업종의 투자심리 회복이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며 “건설사들중 일부는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 투기등급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업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또 하나의 신호다. 

정황상 건설업의 구조조정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일부 건설사의 모럴해저드도 더 이상 봐주기 힘들다. 기업 부실이 가계로 전이되는 한국경제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건설업은 국민의 부동산 자산은 물론 금융권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늦춰지면 더욱 안된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버블 붕괴 후 장기불황을 겪은 이유중 하나가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늦었기 때문임을 건설업계는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속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다.

 김익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