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경제 평론가,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과거 경제정책에 대한 참회록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18년 넘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군림하며 ‘경제 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조차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에 이른 마당이다. “100년에 한번 있을 신용 쓰나미”라는 그의 우려에서도 요즘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각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앞 다투어 금리를 내리고 구제금융을 쏟아 붓는 등 국제적인 공조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참회록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움직임이 신자유주의라는 거센 흐름을 되돌리는 신호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앞으로 세계 경제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처럼 거센 쓰나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경제가 받는 타격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주가는 곤두박질쳤으며 환율은 계속 널뛰기 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중에서는 돈줄이 거의 말라붙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뜬소문으로 확산되는 부도설로 전전긍긍하는 실정이다.

미국과의 스와프 계약을 포함한 정부의 고강도 처방과 한국은행의 긴급 금리인하 조치로 겨우 진정세로 돌아섰다지만, 아직도 갈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특히 정부 조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하루에도 증시와 환율의 변동 폭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투자심리가 정부의 발표보다는 근거 없는 풍문에 따라 요동치는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경제 전 분야에 걸쳐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마당에 부동산 분야만 비켜가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비바람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정부가 지난달 투기지역 해제를 골자로 부양정책을 내놓은데 이어 후속적인 추가대책을 다각적으로 마련 중인 것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가고 있으며 주택 값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서도 공시가격 이하로 떨어진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건만 매수세는 아예 실종된 상태다. 집값의 지지선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건설업계가 맞닥뜨린 사정은 심각하다 못해 처절하다 할 정도다. 국내 시공순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무려 20여개 회사가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 단적인 사례다. 만약 이들 회사가 워크아웃이나 인수합병에 휘말릴 경우 여기에 관련된 수많은 협력업체들에도 감원, 임금동결 등의 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세계적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의 부동산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가 쏠렸던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네바다 등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있으며 대출을 갚지 못해 압류당하는 주택건수도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사들인 5명중 한 명꼴로 주택가치보다 오히려 높은 대출 부담을 떠안고 있는 처지에서 불가피한 결과다.

자본주의의 본거지인 미국에서조차 너무 탐욕을 앞세운 탓이었다며 후회의 한숨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너도 나도 집값 오르는 달콤한 맛에 버블을 묵인했거나 은근히 부추기기도 했던 데 대한 반성이다. 주택대출을 받으려고 패니매(Fannie Mae), 프래디맥(Freddie mac) 창구 앞에 줄을 섰던 게 바로 지난해까지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앞길이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선제적 부양조치들을 잇달아 내놓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주택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키로 한데 이어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폐지 방안과 수도권 전매제한 완화방침을 이미 분양된 주택에 대해서까지 소급적용하는 등의 종합대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일환이다.

아직 부처 간 협의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 규제와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들 조치로 인한 후유증이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선은 시장을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당위성이 먼저다.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순발력 있는 대응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회에 불필요한 거품을 빼는 작업이다. 서로의 욕망으로 쌓여진 버블로 인해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는 교훈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 마음속의 욕망을 자책할 필요까지는 없다. 지나친 탐욕이 문제일 뿐이다. 탐욕으로 인해 바벨탑이 무너지고 참회록을 다시 쓰는 일 만큼은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