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잠실에서는 새 세입자를 모시기위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집안의 도배를 다시하고 싱크대를 바꾸고, 마치 새집을 꾸미는 듯하다. 전세값도 낮췄다. 이곳에 살던 세입자들이 새로 완공한 인근의 대단지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생긴 현상이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전세금을 빼주기가 힘든 처지다. 전세끼고 융자받아 마련한 집인데 갑자기 몫 돈을 내주기가 쉽지않다.

그런데도 여름 휴가철까지 겹쳐 세입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이곳의 전세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전세금이 강북보다도 더 낮은 역전현상까지 빚고 있다. 
   
답답하기는 이사하려는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받아야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잔금을 치루는데, 여의치가 않다. 잔금을 제때에 내지 못하면 10~15%에 달하는 연체이자를 물어야 하고, 자칫하면 입주도 못한채 새 아파트 관리비까지 내야할 판이다. 건설사에 잔금 납부일을 늦춰달라고 사정해보지만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도 흔쾌히 들어줄수 없는 입장이다. 이대로 가다간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이 속출할 판이다. 

진풍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강북의 노원구 아파트가 강남의 송파구 아파트보다 더 비싼 상황이 벌어졌다. 올들어 강북은 재개발과 뉴타운 등의 영향에 힘입어 아파트값이 뛰어올랐지만 강남의 아파트는 거품빼기가 계속돼왔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지난달 아파트 실거래가격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3개월만에 2억원까지 떨어진 아파트가 강남에서 나타났다.

이제 아파트값은 강남북이 뒤바뀌고 전세도 면적에 관계없이 들쑥날쑥하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기존의 관념이나 상식을 깬 것은 분명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건설업체들의 부도다. 경영을 잘못해서 한 두 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무더기로 부도나는 것은 분명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부도를 낸 건설업체는 무려 215개사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2.2%가 급증했으니, 경영 잘못했다고 기업만 탓하기에는 무리다.

건설업체들은 겉으로 아무런 문제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해외수주 호조 등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대형기업조차 허리띠를 조여매기 시작했다. 새로 아파트를 짓겠다는 업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어떻게하면 미분양 물량을 소진시킬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지난주에는 국토부 장관까지 모셔놓고 상생경영을 외쳐댔지만 사실은 각자의 살길 찾기에 급급하다.
        
아파트를 공급하는 건설업계나 수요자 모두 미궁속으로 빨려드는 혼전양상이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도 뾰족한 처방을 내놓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상황이 심각한 것같다. 도쿄의 아파트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들었으며 일본 경제의 스테그플래이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조만간 일본 정부가 내놓을 종합대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해법을 찾는단초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