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차마고도’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해발 4000m 이상의 ’차마고도’는 실크 로드보다 200여 년이 앞서서 만들어진 오래된 교역로라고 한다. 교역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수민족의 종교와 문화가 이 길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필자가 파키스탄 최초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총 책임자였다는 사실을 회고해 보면 너무나 감회가 깊다. ’차마고도’를 오고가는 마방들의 행렬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일이다. 파키스탄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하고 가장 아름다운 고속도로’라고 해도 하나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1992년 5월 새벽. TV를 보던 파키스탄 국민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그들은 TV 화면에 비친 중장비들의 행렬에 눈을 떼지 못했다. ’월드 컵 축구경기 중계도 이보다 더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는게 그 당시 현지인들의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은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무역항 카라치(Karachi)에 내려진 중장비가 고속도로 현장에 투입되는 날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희망과 꿈을 싣고 항구를 떠나는 장비들의 행렬을 현지 TV 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했다.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의 거대한 중장비 행렬을 TV 카메라들이 놓칠 리 없었다. 화면을 꽉 채운 중장비들의 웅장한 모습이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으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서정연한 행렬은 미래의 꿈을 향해 질주했다. 

중장비 한 대의 길이를 8m로 보면, 200여 대의 행렬은 어림잡아 2km 쯤 되는 셈이다. 이러한 중장비가 파키스탄 국도를 횡단하는 1300km의 대장정에 오르며 정적 속에 잠들어 있던 그들을 깨우면서 펀잡(Punjab)을 향해 속도를 낸 것이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펀잡(Punjab)은 ’5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젤롬(Jhelum)강, 체납(Chenab)강, 라비(Ravi)강, 수틀레이(Sutley)강, 베아스(Beas) 강으로 모두 인더스 강의 지류들이다. 아무튼 펀잡을 중심으로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생겨났다고 해도 무망할 것 같다. 

로버트 D. 케이플런이라는 기자는 ’The Ends of The Earth’라는 책에서 파키스탄에 대해 이렇게 썼다. "파키스탄(PAKISTAN)의 이름은 펀잡(Punjab), 아프가니아(Afghania), 카시미르(Kashmir), 이란(Iran), 신드(Sind), 투카리스탄(Tukharistan), 아프카니스탄(Afghnistan)의 첫 글자와 발루치스탄(Baluchistan)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나라이다.   파키스탄이 인공적으로 조합된 국가임을 그 이름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는 "순수한 자들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에 바탕을 둔 이념국가임에는 틀림없다. 수도를 이슬라마바드(Islamabad)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슬람’의 이름아래 군사정치가 시행되었고, 정당들은 인종적 지역 분열을 부추기기도 했다.

따라서, 정체에 빠진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 넣으려는 것이 어쩌면 이 고속도로이었을 것이다. ’나와즈 샤리프 수상은 편잡과 손을 잡고 있고, 부토는 신디와 연합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샤리프 수상은 자신의 지역구인 펀잡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거대한 장비들의 행렬이 파키스탄 전역을 뒤흔들었던 것을 신호로 고속도로 공사는 국민들의 환호성보다 더 큰 폭파 음을 울리면서 큰 길을 내었다. 이때만 해도 우리의 해외건설은 인력위주의 노동집약적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CM(사업관리) 중심의 소프트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상태였다. 파키스탄의 고속도로 공사는 초대형 해외공사를 설계·시공·금융조달(40%)의 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건설업의 수주형태를 선진국 형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