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승부수를 던진다. 열세에 몰릴 때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모한 도박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리의 가능성을 예측하면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필자는 10억 달러의 고속도로 공사를 걸고 승부수를 던졌다.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이 만들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때로는 커다란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협상을 중단하고 귀국하라"는 메시지는 13시간이 넘도록 마라톤협상을 해온 양 측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대우 협상 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건 당연했고, 본사의 공문을 전달한 파키스탄 도로공사 직원들도 수근 거렸다.
’협상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발주자 측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수에 당혹해했던 것이다. 그들도 샤리프 수상의 야심작이 시작도 하기 전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하강하고, 바닥을 치면 반드시 상승한다는 ’파도’ 같은 사상이 흐른다"는 손자병법이 통했던 것일까?
파키스탄 측이 ’대우건설의 뜻을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세금은 매출액의 3%로 하되, 3%가 넘는 부분은 발주처인 도로공사(NHA)가 부담하기로 한다. 관계법령은 향후 국회에서 개정토록 한다."(1992년 6월, 파키스탄 국회는 파키스탄 모토웨이 공사의 세금을 매출액의30%로 의결했다)

장장 13시간 30분의 마라톤협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계약종료 시한 30분을 남겨놓고 극적인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파키스탄 도로공사 Moshin H Sheikch 사장과 대우의 박계오 상무가 계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초대형 고속도로 공사의 대역사는 그 서막을 열게 되었다.

실제로 70, 80년대에 우리의 기업들은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서 대형공사를 마치고 억울하게 세금을 부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말이 통설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공사 준공 후 현지국의 세무당국과 정산을 할 때 시공사가 제출하는 증빙서류를 부인하고 인정과세를 부과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공사 매출액의 15%를 이익으로 간주하고 이익 금액의 60%를 법인세로 부과하면, 세금은 9%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 증빙서류를 보완하고 밀고 당기는 조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는 금액이 4-5%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건설공사에서 10%의 이익이 났다고 치면 5%의 이익이 나지만, 5%의 이익이 났다면 세금을 내고 남는 것은 0%가 되고 만다. 사막의 오지에서 피땀 흘려서 노력한 결과 얻어지는 이익이 0%라면 얼마나 참담할까?

필자가 세금문제에 집착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언제 정권이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내각책임제라는 사실이다(실제로 1992년부터 1977년까지 공사가 진행되는6년 동안 정권이 5차례 바뀌었다). 필자는 이러한 몇 가지 사실들을 감안하여 고정세율 3%를 고집스럽게 내세웠던 것이다. 해외공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최고 책임자는 언제나 남다른 고뇌를 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