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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제정세와 대통령선거

조용식(노무법인 벽성 대표, 법률소비자연맹 공동운영위원장)

2007년 12월 14일 (금)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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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식
	-노무법인 벽성 대표 - 법률소비자연맹 공동운영위원장

제17대 대통령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12월 19일 선거를 치르고 다음 날에는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사람이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금번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책대결’은 실종되고 오로지 ‘비리폭로’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은 한편으로는 옳은 지적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옳지 않은 지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첫째,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정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한 대통령을 뽑자는 주장을 하는 것인데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비리폭로’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비리를 감추고자 하는 측의 논리에 은연중 빠져든 것일 수 있다. 국가적 이익을 위하여 타국민의 인권과 생명은 휴지조각처럼 생각하는 나라도 자국 내에서는 무슨 스캔들이 드러나면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에 진출하지 못함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즉 국제적 차원에서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지만 그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기 위한 자국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정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직하지 않은 지도자를 누가 믿고 따를 것이며 국민들이 따르지 않는데 어찌 외교적 힘을 제대로 발휘할 것이며 타국이 그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어 더 정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은 매우 마땅한 일이다. 둘째, 실제 모든 후보가 나름의 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알리기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텔레비전, 책자, 웹사이트 등에서 온갖 정책을 내놓고 있고 대부분의 신문들은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실종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다.
그러므로 금번 대선에 대하여 비판하여야 할 점은 정책이 실종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후보들의 정책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 즉 국제관계에 대한 국가전략 내지는 비젼, 특히 아시아 태평양 각국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국가 비젼과 대안의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3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가 도쿄에서 양국 간 ‘안전보장협력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일본이 미국 이외의 국가와 안전보장을 골자로 하는 포괄적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1945년 패전 후 평화헌법체제 아래서는 이것이 처음이다. 이 공동선언으로 양국관계가 ‘준동맹국’ 수준으로 격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과 호주는 이 공동선언에서 향후 협력 분야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차단과 테러대책,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예방 공조 등 9개 항목을 제시했으며, 구체적인 실시방법으로 일본 자위대와 호주군의 공동 훈련, 양국의 외무·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안전보장협의위원회 창설을 명기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공동선언을 하게 된 것에 대하여 일본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더욱 공헌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실 그 이유는 첫째,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은 자원의 원활하고도 안정된 수송경로를 확보하여 자원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며, 둘째, 군사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 등 대륙세력에 대한 확고한 견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며, 셋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군사적 위험을 연대하여 방어하고자 지역안보구도를 재편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양국의 정상이 이 공동선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호주의 협력 강화는 결국 미, 일, 호주 3국간 협력강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군사·외교적으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기존의 한-미-일 중심의 아태지역 안보전략이 미-일-호주로 옮겨감에 따라 한국은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주의깊게 유의할 점은 그 주도권이 미국 중심이 아니라 일본 중심이고 일본의 대아시아 전략에 의해서 미-일-호주 간 3각동맹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은 미-일-호주를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대륙세력’ 사이에서 홀로 남겨질 수 있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세력구도가 변경됨에 따른 우리의 외교안보의 우선과제는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항구화라 할 것이며, 주변 정세와 맞물린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은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비젼을 일정 부분 제시하여야 하고 그러한 비젼없이는 앞으로 외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국민들도 인식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특히 상당한 정도의 국내문제는 국제관계를 떠나서 논의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끝으로 재미있는 일을 언급하자면 1905년 7월 29일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태프트밀약’을 체결하여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것을 용인하고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통치하는 것을 인정하였는데, 첫째, 이 때에도 그 명분은 ‘미국·영국·일본은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동맹관계를 확보한다’는 것이었으며, 둘째, 그 비밀협약 서명자 ‘태프트’의 온전한 이름이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이고 일본과 호주간 공동선언의 호주 수상의 온전한 이름이 ‘존 하워드’라는 사실은 신비스러울 정도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목도하면서 어찌 국제정세를 읽어내고 국가전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수 있는가? 앞으로의 대통령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끼인 대한민국”을 구해내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