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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맛이 조화된 ‘은근한 맛’

좋은 차란 어떤 것인가-차의 3요소인 색, 향, 미를 중심으로

2007년 06월 11일 (월)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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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은 연호박색…생찻잎의 상큼한 향이 남아있어야
갈색이거나 구수한 차는 열에 시달렸거나 균형깨진 것
■좋은 차란 무엇인가
불교와 함께 차나무가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정교한 공력을 필요로 하는 ‘전통 제다법’까지는 들어오기 힘들었다. 초의선사, 정다산 선생 등 극소수가 손수 제다를 했고 고민한 결과를 몇권의 책으로 남겼지만 그 내용이 정교하지 못하고 실천이 전수되지 않았으며 지금의 환경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처럼 한국에 ‘전통 제다법’에 대한 기준이 없고 따라서 좋은 차에 대한 기준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어떤 차가 좋은 차인지를 알기는 더욱 힘들고 차인들도 오랜 차살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마시는 차가 막연히 좋은 차일 것으로만 여기고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날 몇몇 차인들이 지리산 일대와 야생차밭이 산재해 있는 나주, 함평, 곡성 등지 산골에 스며들어 연구제다를 하고 있다. 그들이 도출해낸 ‘좋은 차’의 기준에서 공통적으로 합의된 부분을 간추리면 좋은 차는 ‘색깔은 연호박색, 향은 생찻잎의 상큼한 향이 되도록 많이 남아있을 것, 맛은 오미가 적절히 조화된 은근한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색이 갈색이거나 맛이 지나치게 구수한 차는 좋은 차는 아니고 제다과정에서 열에 너무 많이 시달렸거나 다른 잘못된 원인이 있어 균형이 깨진 것이라는 것이다. 향, 색, 맛을 형태나 감각적으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 기준에 맞는 좋은 차는 사람에 이로운 성분을 이상적으로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에 맞지 않는 차는 제다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차의 성분 함량비가 깨져 있어서 사람 몸에 이로운 작용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차는 기호품일뿐만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마시는 것이어서 좋은 차와 그렇지 못한 차를 구별해야 올바른 차살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차살이를 해 온 지허스님은 “한마디로 차는 색, 향, 미다. 온전한 색, 향, 미는 곧 질 좋은 녹차의 조건이며, 우리차를 판단하는 기준이다”면서 “숙련된 경험으로 봄에 맨 처음 난 일창이기(一槍二旗)의 어린잎으로 엄격한 긴 덖음의 과정을 거쳐 차를 만드는 것은 이와 같은 온전한 색향미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맛이 강하면 향을 찾기 힘들고 향이 지나치면 맛을 느끼기가 어려우며 수색이 강해지면 맛이 강해진다. 곧 색향미의 조화가 더하고 덜함이 없이 어우러진 차, 이러한 모든 요건을 갖춘차가 명차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바로 중정(中正)이라할 수 있다.

■차의 색
차의 색이란 차탕(茶蕩)의 빛깔을 말하는 것으로 차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데 덖음차의 경우 우려낸 찻물이 맑고 연두빛이 도는 황금색이어야 한다. 찻물이 탁한 것은 비비는 과정에서 너무 무리한 힘을 가해 찻잎이 무서진 탓이 많다. 덖음차의 묘미는 찻잎이 가진 수분만으로 익히는 것인데 혹자는 덖기 전에 찻잎에 물을 준다던지 차솥에 먼저 물을 주고 덖는데 이럴 경우에는 찻잎이 너무 물러져 비빌 때 이겨지기 때문에 종종 다탕이 탁함을 볼 수 있다. 다탕이 탁하면 향과 맛조차 무겁다. 우리차색인 다색의 깊은 맛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찻잔으로는 고려와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분청자기를 꼽는다.

■차의 향
차의 향은 차의 본질로 말하기가 가장 난해하다. 국화에선 국화 향이 나고 찔레꽃에선 찔레향이 난다. 향기만 맡아도 그 향기를 지닌 꽃을 알 수 있다. 이미 꽃봉오리가 향기를 다 가지고 있지만 꽃으로 피어날 때 비로소 향기를 바람에 낸다. 찻잎도 향기 나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 차를 만들 때 새로 난 찻잎이 반가워 생엽을 그대로 찻주전자에 넣어 생엽차를 만들어 마신다. 그 때 찻잎의 풋한 향을 즐기며 새 차의 반가움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향이라기보다는 긴 겨울 끝에 만나는 오랜만의 싱그러움에 불과하다.
차의 향은 만드는 이의 손길에 따라 달라 잘 만든 차에서는 농익은 향기가 난다. 잘익은 향기는 차를 마신 후에도 입안에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향기가 맑고 가볍다. 차를 농익게 만들지 않으면 차향에도 풋내와 야릇한 비릿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차향을 보존하기위해 우리조상들은 부단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다. 옹기에 차를 저장하고 오동나무통에 보관하여 마신 것도 그 일환이다.

■차의 맛
은은하고 담백하게 나타내는 것이 우리차의 맛이다. 차의 맛에는 대체로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떫은맛이 있다. 이는 어느 식물이나 마찬가지로 차도 그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무기질 때문이다. 차는 이 다섯가지 맛을 잘 조화시켜 어느 한맛도 과(過)하거나 핍(乏)하지 않아야 감칠맛이 더해지는 좋은 차 맛을 낼 수 있다. 원래 단맛과 쓴맛, 떫은 맛, 고소한 맛은 상대적이어서 균등하게 공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잘 만들어지고 잘 끓여진 차는 이 다섯가지 맛이 균등하게 공존한다. 차의 맛을 잘 모르면 이 다섯가지의 균등한 맛 또한 알 수 없다.
약한 신맛은 상쾌함과 청량함을 주고 약한 염도의 짠맛은 여러 맛을 안정되게 하고 약한 쓴맛은 단맛은 강하게 한다. 차를 잘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 맛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차를 마시고 난 후 오랫동안 그윽하게 남는 차향과 청량한 맛을 찾아내는 일이다. 덖음차는 펄펄 끊는 물에서 한 김만 내보낸 뜨거운 물로 마실 수 있어야한다.
차의 맛을 잘 표현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이 있다. 차와 참선이 불가분의 일미(一味)로 한가지 맛이라는 뜻이다. 선(禪)은 사려수(思慮修)로 곧 사고와 명상을 닦는다는 말이다. 선(禪)을 말로 할 수 없듯이 차 또한 많이 마셔보고 만들어 볼 때라야 그 진미를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박화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