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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용기 준 이봉주의 역주

2007년 03월 20일 (화)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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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8분04초 좋은 기록, 선수로서는 노장 37세 마라토너, 6년만의 국제대회 우승, 35번째 풀코스 완주, 우승상금 8만 달러 등의 숫자가 곁들인 판에 박은 해설보다는 이 독특한 기사의 ‘신바람’이 오늘 봉달이의 기적을 더 적실하게 우리 가슴에 가져다줍니다.
― 으랏차차! 봉달아! 눈물나게 하는 봉달아! ‘봉달이’ 이봉주를 보면 속이 짠하다. 안쓰럽다. 출발 전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냥 뭐~”하며 얼버무린다. 그건 내심 자신 있다는 얘기. 몸놀림도 가벼워 보였다. 쪼글쪼글한 얼굴, 덥수룩한 턱수염. 검은 선글라스와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몸은 마른 명태처럼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마치 ‘뼈에 가죽만 입혀 놓은 것’ 같다.
동아일보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 글 들머리입니다. 그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 마라토너에게 35km 지점은 아득한 경계다. 일단 그 경계를 지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도 가도 사막 길. 타는 목마름. 휘청거리는 다리. 터질 것 같은 심장. 길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어떻게 김 기자는 이렇게 마라톤의 본성을 꿰뚫고 있을까요? 필자는 기자로서보다 얼치기 마라토너로서의 오랜 경험으로 마라톤을 파악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라톤 기사들이 구경 이야기에 ‘기록’의 살을 붙인 관람기에 그친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짐작합니다. 그러나 김 기자의 기사는 대지(大地)와 인간이 교감하는 마라톤의 혼신(魂神)을 속속들이 품어냅니다. 귀한 선수의 선전(善戰)에 걸맞는 이 같은 튼실한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는 우리 언론의 자산일 터입니다.
그 이봉주가 오늘 또 하나의 큰 약속을 했습니다.
“베이징올림픽에도 나가보고 싶습니다.”
어떤 신문은 그가 “베이징올림픽 때까지 뛰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한순간도 TV화면을 놓치지 않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는 분명 베이징에도 가고 그 후에도 어디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들려주었지요. 우승테이프를 홀쭉한 배로 밀치고 들어온 후에 예의 그 어눌한 말투로 들려준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신문은 이를 ‘어렵기는 할 테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베이징올림픽까지는 출전해 보겠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표현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전의 감회를 “그냥 뭐~”하며 얼버무리는 이봉주의 어법으로 본다면 오늘 이 ‘봉달이의 희망’은 실은 그의 심중(心中)을 무겁게 드러내는 약속으로 읽어야 옳을 터이지요.
42.195km를 2시간 8분 4초에 뛰었답니다. 이 수치들을 풀어보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그는 그시간 동안 시속 19.782km로 달린 것입니다. 1분당 330m(0.33km)의 속도지요. 짐작이 가십니까?
러닝머신이나 고정자전거로 운동해보신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실 것입니다. 성인 남성의 빠른 걸음이 시속 4~5km인 것을 상상해보셔도 좋겠군요.
이제 본론입니다. ‘짠한 봉달이’가 우리를 울렸습니다.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한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신념과 성실이 ‘끝내 이룬다’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우리 주변, 이 신념과 성실이 가져올 성과에 대해 의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핵폭탄과도 같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마라톤 경주(競走)의 역전극(逆轉劇)이 주는 감동도 그렇지만, “이젠 끝났지.” “한물갔지.” 하는 주위의 실없는 숙덕공론을 극복해낸 이봉주의 부활의 의지는 차라리 ‘용기’일 터입니다.
봉달이가 연출한 장쾌한 이 마라톤 드라마가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특히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에게 선사하는 메시지는 참 착한 선물입니다.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라는 화수분처럼 끝없이 퍼가도 한없이 귀한 뜻이 ‘봉달이’의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가 소속한 삼성전자라는 회사의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블루칩으로 손꼽히듯 이봉주도 대한민국의 또 다른 블루칩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도 오래 우리 이웃으로서 손을 흔들어 희망과 비전을 퍼뜨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존재만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DNA를 증명하는 듯한 그의 ‘본질’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마음속의 설렘’을 그는 다시 물결치게 합니다.
‘봉달이’는 이렇게 외칩니다.
“어서 일어나서 스스로 빛을 퍼뜨리세요. 당신보다 더 희망이 필요한 이웃이 많답니다.”
오늘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철없는 팬의 자격으로 이봉주 선수의 약속을 무겁게 또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베이징올림픽에 가고 싶다는 말은 필시 “우승하겠다.”는 의지겠지요. 여러분과 함께 그를 응원합니다. 이제까지의 투혼(鬪魂)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그가 더 오래 우리 모두에게 빛을 던지는 존재로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서 일어나서 저와 함께 그를 응원하십시다. ‘이봉주’는 우리를 위한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