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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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개방의 부메랑

2005년 01월 11일 (화) 00:00:00

조명래

1997년 IMF 환란이후 이어진 구조조정의 바람을 타고 해외자본이 국내금융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국내 기업과 금융들은 생존을 위해 이러한 돈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썼다.
해외투자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수익성이 높은 곳을 찾아 집중적으로 투자한 뒤 적정 수익률을 올리면 곧바로 회수하고 다른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나곤 한다.
이들에게 기업이나 은행은 신탁상품의 운용대상에 불과해 수익성이 떨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돈을 끌어다 쓴 기업이나 은행들은 불안정한 투자조건으로 인해 안정적인 경영을 펼칠 수 없고, 그 결과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는 것을 겪게 된다.
이는 실제 국내 굴지의 기업과 은행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는 성장둔화와 경기불황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과의 한국인 교수는 최근 국내 일간지에 기고한 컬럼에서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요체는 성장률 하락에는 무엇보다 자본시장 자유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 개방, 기업인수합병의 자유화, 주주권 강화 등으로 상장기업들은 배당률을 높이고 경영권 방어에 자금을 퍼부어야 해야 하며 공격적인 투자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은행산업의 자유화, 외자에 의한 은행지배의 확대, 금융규제의 보수화 등으로 은행의 기업금융도 고갈되었다고 한다.
기업이 투자를 못하니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이 과거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고, 따라서 성장이 잘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7년 환란이후 몰아닥친 신자유주의가 자본시장을 통해 드러난 결과다. 이와 관련된 주요 징표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점이다.
현재 거래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시가총액 42%을 보유하고 있다. 이 비중은 전 세계 32개 주요 국가의 주식시장 중 헝가리, 핀란드,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비중이 높은 만큼, 성장과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투자자들에 의해 잠식되는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위기 후 7년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총 114조원을 번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 평균 20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한 해 평균 17조원의 이익을 올려 외국인 투자자들의 연간 수익 66%에 불과하다.
해외자본의 침투는 기업이나 은행부문만 아니라 부동산부문으로까지도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98년 외국인투자법의 개정으로 부동산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2004년 6월까지 외국인이 사무용 빌딩에 투자한 금액은 총 5조6천억원에 달했다.
대체로 이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몰려 있다. 론스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투자회사들은 현재 서울 시내 대형빌딩 5채 가운데 1곳을 소유한 채 최대 연 23%의 투자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이들은 투자금액의 70%를 보험사 등 국내 금융기관에서 조달하고 있어 불법, 탈법적인 내국인의 재산반출 러시와 맞물러 국부유출의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정부의 미간행 보고서에 의하면 외국투자자들은 목표 수익률을 실현하면 매각처분해 본국에 송금함으로써 재투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세계화시대, 지구상의 어느 국가도 과거와 같이 문을 안으로 잠그고 국민경제를 꾸려갈 수 없는 법이다.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투자를 진작시켜 꺼져가는 경제를 살려내는 것은 물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자본이 국내기업의 소유구조로 들어가면 기업의 지배구조 마저 건전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 IMF위기 이후 정부나 언론들의 주장이었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가세해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시켜주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돌아가면 국내 학계에서는 이른바 종속이론과 종속적 발전에 관한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과 자본이 주도하는 해외경제부문에 대한 예속은 국내의 정치, 경제 발전에 많은 파행과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 즉 종속상태에서도 자주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만만찮았고, 세계 학계에서는 한국의 경제성장모델을 그 보기로 제시하곤 했다.
IMF위기를 겪는 동안 생존 그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경쟁과 자유화란 이름으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했고, 이를 통해 경제회생의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늘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신자유주의식 개방화와 자유화가 동반한 후유증들이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노대통령은 경제침체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산업구조, 노동시장, 계층구조의 양극화’를 꼽았다. 이는 전적으로 IMF위기 극복을 위해 처방한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다.
재계는 이러한 진단을 ‘여전히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분배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경제학이 가르치는 중요한 내용이다.
지금은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성장방식이 가져오는 폐해를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