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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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 그리고 우파와 좌파

2004년 05월 04일 (화) 00:00:00

노영기

원론적으로 성장은 떡을 키우는 문제이고, 분배는 떡을 나누는 문제이다. 떡을 잘 나누려면 먼저 큰 떡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장과 분배는 장기적으로 일의선후의 문제이며 상호 조화의 문제이지 대립 갈등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성장이냐 분배냐를 가지고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이 조장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각종 정파들이 성장과 분배의 단기적인 상충 성을 이용하여 각자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자 대립하기 때문이다.
항간에 회자하는 우파는 성장을 우선하는 정파이고 좌파는 분배를 우선하는 정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호하는 정파이고, 좌파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성향을 가지는 정파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막연히 우파정책은 기득권층에 유리하고, 좌파정책은 비 기득권층, 즉 빈곤계층에 유리하다는 도식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파를 보수로, 좌파를 진보로 치부하기도 한다.
우파이든 좌파이든 그들이 천명하는 목표는 모두 국리민복이다. 국리민복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로만 가능하다.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떡은 커지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사회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분배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빈부의 격차는 좁아지지만 나눌 떡이 작아져 결국 빈곤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성장과 분배의 조화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권은 물론 사회주의 경제권에서 조차 최선의 분배는 곧 성장이라는 동의에 도달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좌파 정권이 득세했던 세계 곳곳에서 최근 우파정권이 세를 타고 있고, 좌파 정권이라 해도 우파정책을 쓰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네덜란드는 적게 일하면서 높은 복지수준을 누리고자 하는 국민들의 요구(네덜란드 병)를 수용하는 좌파정책으로 1980년 초 극심한 경제위기를 맞이하였고, 이를 노사정 대 타협(바세나 협정)에 의한 경제 살리기(성장) 정책으로 극복하여 1991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였다. 브라질의 좌파 대통령 룰라는 취임하자마자 시장경제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전형적인 성장위주의 우파 정책으로 경제 살리기에 괄목할만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좌파정권의 인기영합적인 분배정책으로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물론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성공시키지 못해 국가부도를 염려해야하는 아르헨티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죽의 장막 중국은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등 성장우선의 우파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수년간 년 평균 8%가 넘는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된 베트남은 전격적으로 국영기업을 민영화 하는 등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좌파정권의 본산이랄 수 있는 러시아는 이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개혁을 끝내고 인도, 중국, 브라질과 더불어 2050년대 경제규모 세계 서열 5위 이내를 꿈꾸는 소위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우향우 하고 있는데도 왜 한국에서는 좌향좌를 걱정해야 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는 요지부동의 국가경영 원리이다. 헨리 조지가 갈파한데로 참된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경제적 민주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분배정의인데 이는 성장이 없고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성장을 전제로 하지 않은 분배는 결국 모든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여권과 노동계를 대표하는 세력이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부유세 신설,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등 인기영합적인 분배정책의 전형인 것 같아 심히 염려스럽다. 부자 몇 사람 혼내주려다 나라 경제 말아먹기 딱 좋은 정책들이 속속 분위기를 타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민들은 개혁을 원하지만 일자리도 원한다. 개혁이 인기영합적인 분배정책으로 달성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용 없는 개혁분위에 도취되어 일자리 만들기에 실패할 때 300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와 1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들이 가만히만 있지는 않을 것임을 정부 여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