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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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낙석주의

2003년 08월 21일 (목) 00:00:00

노영기

설악산 가는 길에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다보면 '낙석주의'라는 팻말을 심심치않게 본다. 큰돌들이 굴러 떨어질 듯 하면 가지말고, 떨어지면 요리 조리 잘 피해가라는 이야기 일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머리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들이나 산사태를 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일본의 산세는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더 험하고 가파르다. 그런데도 일본의 어디를 가나 '낙석주의'라는 팻말이 없다. 다만 그물 망처럼 엮어진 시멘트 구조물이나 여러 가지 지지구조물들이 산사태를 거의 영구적으로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왜 한국은 낙서주의라는 팻말이 필요없게 만들지 못하는가? 일본보다 지진의 위험이 작아서 인가?
경주 동해바다 문무대왕 수중 능 코앞에는 판자 집 같은 불결해 보이기까지 하는 생선 횟집이 즐비하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바다에 묻힌 문무대왕이 날이면 날마다 보고 있는 것은 술에 취해 고성방가로 흐트러진 모습의 후손들과 그들이 팽개치고 간 쓰레기로 썩어 가고 있는 해변이다. 어떤 심정으로 후손들의 어떤 미래를 보고 있을까?
수도 서울의 상수원인 남한강변을 따라 가보자. 러브호텔이 즐비하다. 카페라는 것도 많다. 부산이나 목포의 해안으로 가보자. 고층 아파트들이 산 쪽에서는 바다를 가리고, 바다 쪽에서는 산을 가리고 있다. 마치 흉물 병풍이 자연파괴를 과시하고 있는 듯하다. 물 맑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백숙이나 사철탕 집이 널려있다. 그린벨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갈비 굽는 가든이 그리도 많다. 강산에는 늘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한 여름 피서철이 지나면 산과 강과 계곡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호수와 바다는 썩어 청정을 잃는다.
화산지형인 일본열도에는 횟집을 차리거나 러브호텔, 아파트, 가든을 지으면 떼 부자가 될 수 있는 절경의 계곡과 해안과 호수가 널려있다. 생선회를 좋아하기로는, 그리고 성(sex)이 자유롭기는 일본인들이 원조이다. 주택가격도 살인적으로 비싸다. 육식도 좋아한다. 그런데도 없어야 할 곳에 횟집이 없다. 러브호텔도 없다. 고층아파트나 가든은 더욱 없다. 일년 내내 산과 강과 계곡은 청결하고, 호수와 바다는 청정하다. 일본인들이나 일본의 정부 또는 지도층 인사들이 이재를 모르는 바보들이기 때문일까?
일본은 지금 전 국토를 공원화 하겠다는 야심 찬, 그러나 실현 가능한 작업을 일사불란하게 추구하고 있다. 환경이 중요하고 관광이 뜨는 산업임을 정관산학은 물론 온 국민이 일심으로 깨달아 실천에 옮기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자위대 법을 뜯어고치는 등 군사대국으로 가기 위한 포석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경제가 다소 어렵지만 이렇게 통일된 국론으로 노력하다 보면 결국 일본은 오랜 불황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도를 넘은 각종 파업사태 등 집단적 이기주의가 경제는 물론 국가존망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국민을 굶기면서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부도덕한 북한 정권의 문제를 놓고 감상적인 민족주의가 국가안보에 관한 국론을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만들고 있다. 정치권은 '굿모닝 게이트'라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은폐 축소하느라 똘똘 뭉쳐 방탄 국회를 열고 있다. 대북 사업에 허리가 휘는 기업으로부터 수백 억원의 정치자금을 갈취하고도 범죄성 자금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악귀같은 정치인들이 버젓이 태양을 바라보고 살 수 있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청와대는 독선과 변명과 괴변으로 국론 분열과 집단이기주의를 방치하다 못해 조장하기까지 하고 있다. 일본이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대동아 공영의 야욕을 무엇으로 깰 것이며, 상해 쇼크로 대변되는 중국의 추월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도대체 21세기를 관류하는 국가발전의 비전과 통치철학은 있는 것인가? 386은 독립투사도, 개혁의 전사도 아니다. 다만 무책임하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점에서 선배 건달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운동권일 뿐이다. 이를 청와대가 시급히 깨닫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낙석주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