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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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의 공간개발논리

2003년 06월 02일 (월) 00:00:00

조명래

노무현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들 중에서는 공간적 함의를 띤 것들이 유독 많다. 가령, 동북아경제중심국 건설,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행정수도의 이전 등과 같은 핵심 국정과제들은 모두 국토 상에 정치 및 경제 활동의 재배열을 겨냥하는 것들이다. 계획대로만 추진된다면 국토공간의 풍경은 심대히 변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지난 30∼40년간 추진된 근대화는 국토 상에 꾸려지는 우리의 삶의 패턴을 끊임없이 재배치시켜 왔던 터라, 신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이 초래할 국토공간의 재편이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새롭지 않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가발전전략은 성장과 개발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고, 그런 만큼 국토공간은 늘 성장과 개발의 현장이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이의 연속선에 있지만, 신정부의 공간개발논리는 역대의 다른 정권의 것과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서울이란 수도의 위상과 기능 변화를 도모하면서 국가발전을 공간적으로 일구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정부의 국정운용은 '수도(首都)에 항거'하는 공간개발논리를 띠고 있다 할 수 있다.
그간의 급속한 발전은 수도 서울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이른바 일극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국토공간 상황에서 분배, 평등, 참여 등을 국정의 핵심 화두로 하는 신정부는 그러한 국가발전의 가치를 공간적으로 실현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국토불균형 혹은 공간불평등의 정점이 되는 수도를 공략하지 않고는 이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신정부는 탈수도권화를 겨냥하는 분권과 분산의 공간발전전략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정부의 발전전략이 수도를 포기하고 비수도를 일방적으로 육성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수도에 저항'하는 분권적·균형적 발전전략을 추구하지만, 기실 그 내면에서는 여전히 수도의 경쟁력과 차별성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동북아경제중심국건설, 국가균형발전, 행정수도이전 시책들은 분권과 분산화를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제 추진방법이나 효과는 수도 서울의 위상과 역할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조건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 행정수도의 이전도 이전 자체를 위해, 혹은 수도이전에 따른 서울의 위상약화와 그에 따른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서울을 '경제수도'란 새로운 위상 설정을 전제로 해서 추진될 예정이다. 때문에 경제논리가 더 우월하게 작동하는 지금의 국토공간 속에서 분권·분산을 위한 노력은 수도로의 경제력 집중을 부추겨 종국에는 국토·지역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현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들은 이렇듯 이중적 공간개발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권·분산의 공간논리와 집중화·중심화의 공간논리 간의 긴장관계가 신정부의 국정시스템 속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신정부의 국가운영기조가 여전히 개발주의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정부가 펴는 국정과제들은 모두가 수도의 권력과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을 겨냥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수도의 발전과 성장을 포기하지 않은 채 비수도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수도와 비수도 모두를 '아우르는 논리'는 바로 '개발의 논리'이다. 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발전과 개발의 관성을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공간적 논리일 수 있고, 또한 거기에 터 해 있는 권력의 관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방의 내생적 발전과 국토의 진정한 균등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며, 이런 조건을 담보해 내기 위해 국정과제들은 어떻게 추진되어야 하나?
그 답은 이렇다. 정치권 분권과 경제적 분권은 처음부터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또한 개발과 보전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발전전략이 처음부터 강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운영시스템이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을 관장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세대내, 세대간, 인간과 생물종간의 형평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현실에서는 개발과 보전, 경제와 환경, 중앙과 지방, 지구적인 차원과 지방적인 차원의 상호통합성을 지향하는 정책운용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국가유형의 한 전형을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영국정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관장하는 국정운영시스템을 위해 정부부서의 기능과 역할을 전반적으로 통폐합했는 데, 그 중에서 백미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건설, 교통, 지방행정 업무를 통합하는 부서의 설립이었다.
노무현정부도 분권과 균형을 사회적으로, 국토공간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정운용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관장하는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국정과제들도 이를 실현하는 수단과 틀로 집행되어야 한다.
즉, 동북아 경제중심국 건설, 분권과 균형발전, 행정수도이전, 150만호 주택건설 등은 모두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리 속에서 그 목표와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강구되고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특히 지역적 형평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정과제들은 처음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불균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 틀 속에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