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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분산·분업에 의한 지역균형발전

2003년 05월 14일 (수) 00:00:00

신정철

국토공간구조와 사람의 인체를 서로 대비하여 그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는 학자들이 많다. 특히 수도권의 지나친 집중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경우 자주 인용되고 있다. 기능과 역할이 다르지만 신체가 균형있는 성장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도 균형있게 커 나가야 정상적인 발전이 되는 법이다. 어느 특정지역만 과도하게 비대해지면 몸이 균형을 잃듯이 신체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심장이 기형적으로 비대해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 아니고 고착화되면 몸의 순환구조와 기능이 기형적으로 큰 심장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버린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나 비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능과 활동이 한 곳으로만 집중하면 혈액과 영양분이 그곳을 중심으로 순환되듯이 공간구조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형에 대하여 또 다른 재미있는 비유도 있다. 사람의 눈이 간사하여 자기 자식은 상당히 뚱뚱해도 오히려 그것이 두툼하고 실하게 보이는 것이 헐벗고 굶주린 60년대를 경험한 부모의 마음이다. 수도권의 비대화는 인정하면서도 비수도권과의 격차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우의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수도권 집중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려면 현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병이 있는 사람에게 정밀한 진단을 통해 병의 실상을 알게 해주어야 확실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고질화된 병을 근원적으로 고칠 수 없는 어려움과 능력의 한계로 의사가 현상유지만을 위한 처방과 대증요법적 치료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상태가 악화되면 처방의 강도를 높이고 고통이 심하면 진통제를 놓는 식으로 무작정 끌고 가는 방식이다.
서울의 인구는 1960년 전국인구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1990년에는 1,060만명을 초과하여 전국인구의 25%수준에 이르렀고, 그후 다소 감소하여 2001년말 기준으로 전국인구의 21.5%수준에 이르고 있다. 서울은 수도인구집중률로서 세계최고 수준이다. 데이비스(Kingsley Davis)박사의 종주도시 인구집중률 지표에 있어서도 서울은 어느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수도권 인구를 살펴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국토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1960년 전국인구의 20.9%가 거주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1년말 기준으로 전국인구의 46.6%가 밀집하여 살고 있다. 수도권 인구집중률 또한 세계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동경권 인구가 3,510만명으로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 2,252만명보다 많아 세계 최대지만, 동경권 인구집중률은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집중률보다 19%정도 낮은 27.6%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는 동경권과 우리나라 수도권 이외에 2,000만명 이상의 인구를 갖는 뉴욕권의 인구집중률은 7.7%, 멕시코시티권의 인구집중률은 20.3%이다.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인구 두명중 한명꼴로 종주(宗主) 도시권에 모여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제2차 국토건설종합계획이 1982년부터 1991년까지 10년 장기계획으로 출범하였으며 계획의 주요목표를 국토균형발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인구의 지방정착을 유도하기 위하여 주요 국토거점을 다핵구조로 재편하고 지역생활권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또한 수도권집중의 문제를 예견하여 서울, 부산의 양대도시를 성장억제 및 관리상태로 규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되고 수도권 집중억제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지방육성책이 결여된 상태에서 추진된 수도권 규제시책은 제조업의 수도권분담비율을 오히려 크게 증가시켰다. 한편 1989년부터 1990년 3월까지 청와대에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 설치되고 11개 청급(廳級) 중앙행정기관이 대전청사로 이전하는 괄목할 만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 이후 문민정부시대에는 신경제 5개년계획에 따라 수도권에 대한 간접규제로 전환되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같이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지방으로의 분권·분산·분업을 통한 정책 실현에 있다. 비수도권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중추기능을 이전하는 분권정책, 균형발전을 위하여 금융, 기능, 인재를 지방으로 옮기는 분산정책 그리고 기존 수도권기능의 변환을 통하여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각자의 기능을 분담해서 수행하는 분업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분권정책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과 산하기관은 국가공공기관의 특성에 따라 이전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소재 600여개 국가기관에 500명 정도가 근무하고 가구원수를 평균 3.3인으로 추정하면 비수도권으로 공공기관이 이전할 경우 100만명 정도의 분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분산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우선 강력한 지역균형발전 관련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지역균형발전법을 조속히 입안해야 한다. 또한 세원의 지방이양, 인재의 지방할당제도 도입 등이 추진돼야 한다. 분업정책으로서는 수도권의 주요기능을 금융, 물류, IT, 국제화 기능 등으로 변환하여 수도권내 기존의 많은 기능들을 과감하게 비수도권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