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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과제

2003년 04월 21일 (월) 00:00:00

노영기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있다. 미국경제의 호전을 통한 세계경제의 상승을 점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록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났어도 워낙 미국경제가 신통치 못해 세계경제의 시련이 아직도 멀었다는 불길한 예측도 만만치 않다. 전후 미국경제의 향배는 곧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미래이기에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폴 크루그만 교수가 미국경제와 전쟁의 상관관계를 갈파한 바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걸프전이 불황기에 빠져 허덕이고 있던 미국경제를 번번이 살려냈다는 것이다. 전비의 지출은 곧 재정투융자의 효과와 같은 효력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크게 억지는 아닌 것 같다.
미국은 걸프전에서 GDP의 2%에 해당하는 전비를 지출했고 그 결과 걸프전 이후 미국경제는 상승 반전하여 소위 신경제로 설명되는 장기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미국-이라크 전쟁에 미국이 지출하는 전비는 미국 GDP의 3%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후의 경기상승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재정지출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앞날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상황이 걸프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막대한 전비 지출에 의한 재정적자의 증가가 전후 미국경제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적자의 확대에 따른 달러가치의 하락이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을 부추겨 결국 미국경제는 다시 침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의 세계적인 초저금리도 전후의 경기회복을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미국의 경우 그동안의 초저금리와 막대한 전비 지출로 야기된 물가상승 압력 때문에 금리를 더 이상 낮추기도 어렵거니와 금리를 추가로 내려도 그 효과는 매우 작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러한 저금리의 경기부양무력증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과정을 통하여 고조된 아랍권의 반미감정이 미국 등을 목표로 한 테러로 나타날 경우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일대 공황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세계경제가 테러쇼크에 빠지면서 금융시장 불안과 투자 및 소비심리의 급격한 냉각이 결국 경기회복을 영영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가격의 폭락 가능성도 크다. 세계주식시장이 지금 전쟁관련 불안심리로 침체되어 있지만 역사적인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테러와 같은 새로운 충격이 가해질 경우 세계의 주가는 크게 동반 폭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세계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국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한국경제가 걱정할 일은 혼란스러운 세계경제의 영향을 최소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섣부른 경기부양책의 남발은 금물이다. 장기간의 저금리, 지나친 가계대출 등 한국경제는 미국경제 못지 않게 강한 물가상승압력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경기부양은 저금리정책보다는 재정지출 정책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에 대한 국내외적인 불안심리를 해소하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개혁조급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수파괴니 사오정(45세이면 정년퇴임)이니 하는 과격성과 전시성을 탈피해야한다. 외교 및 경제정책에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국내기업이나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을 예측 가능한 나라로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핵 관련 미국과의 공조를 가시적으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대국의 논리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미국의 도움이 없이 북핵으로부터의 안보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이 빠지면 외국인 투자자금도 빠져나가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대통령과 젊은 세대들이 감정에 치우쳐 쓸데없이 미국을 자극하는 무책임한 언동을 하고 이를 주어 담느라 우왕좌왕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