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문

편집 : 2024.5.2 목 19:35

홈 > 뉴스 > 투자리포트 > 부동산산책

이라크 전쟁과 환경재앙

2003년 04월 01일 (화) 00:00:00

조명래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판을 벌이는 것은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이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본래 동지 관계였던 이라크와 미국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1989년 이라크 국영석유회사의 민영화를 주장했던 미국의 요구를 후세인이 거부하면서부터였다.
세계 석유생산량의 25%를 소비하는 미국으로선 미국의 수입량 98년 치에 해당하는 2억 2,000만 배럴의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이라크를 그냥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미국의 석유자원은 2010년경에 바닥이 나고 이라크는 미국의 석유수요의 절반 이상을 채워줄 유일한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자본을 배경으로 한 정치세력들이 미국의 현정부를 맡게 된 것이다.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가 되기 전에 석유회사 임원이었으며 2000년 대통령 선거 때는 석유 및 가스업계로부터 18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금번 전쟁을 가장 강력하게 밀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은 유전개발서비스 회사를 한 때 직접 경영했고 현 정부에 들어오고 난 뒤에는 알래스카 유전개발을 허용했으며, 또한 세계환경단체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는 교토의정서의 비준거부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대외정책의 매파인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도 쉐브론이란 석유업체의 사외이사였던 적이 있다.
이렇다 보니 이번 전쟁은 겉으론 대테러, 대량살상무기 해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그 내면에서 이라크를 장악해 21세기의 안정적인 석유조달 기반을 구축하려는 계산으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 와중에도 미국은 유전지대와 석유시설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지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침략을 받은 이라크로서는 이를 그대로 넘기고자 하지 않을 터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도 그랬듯이 유정을 방화하여 이를 방어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미국이 그들의 석유를 탐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이라크에는 2,000여 개의 유정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데, 이들이 방화되면 걸프전보다 더 끔찍한 환경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걸프전 당시에는 약 750여 개의 유정이 방화되어 유독성 연기가 반경 1,600㎞ 상공을 뒤덮었고 6,000만 배럴의 기름이 유출되어 1,000만㎡ 정도의 토양이 오염되었다. 그 피해는 아직도 복구가 안될 정도이다. 이번에는 양측간 치열한 지상전이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유전 파괴가 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중남부 일대에서 지금과 같이 대규모 폭격을 동반한 전투가 계속된다면 주요 유정과 송유관이 대대적으로 파괴되면서 국토의 중심부를 흐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으로 석유가 흘러들어 생태계 전반의 교란을 가져오게 된다. 그 피해는 무엇보다 이 두 강에 의존하는 농업기반이 무너지고 강을 타고 석유가 폐르시아만으로 흘러들면 바다생태계마저 파괴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여주는 1만여 곳의 고대 유적지들도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당할 것이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위치한 이라크는 생태적으로 중요한 습지, 농경지, 초목지대가 풍부히 형성되어 있다. 이라크의 습지대는 중동지역에서 새들의 주요 서식지로 33곳의 습지대가 93년 중동의 주요 습지대로 등록되었다. 국제자연보호연맹이 94년 작성한 세계 멸종위기 생물목록에는 지역에 사는 11종이 포함되어 있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비단 유정의 방화만 아니라 미국의 막강한 대량살상무기의 사용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열압력 폭탄, 전자기폭탄, 그리고 열화우라늄탄 등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된다면 인간의 주거지와 자연서식지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복구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은 100만에 가까운 열화우라늄 총탄과 포탄을 사용해 이라크 남부지역이 300만 톤의 열화우라늄으로 오염되었다. 열화우라늄의 반감기는 45억 년이다. 걸프전쟁이 초래한 화학,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이라크 남부지역에서는 암과 백혈병 발생률이 6배나 증가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러한 대량살상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어 이로 인해 이라크인 5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후의 각종 질병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실제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의 지하수 40%가 오염되어 있었으며 10여 개국에서 380억 달러의 환경피해 보상을 유엔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금번 전쟁은 근대가 이룩해 온 근본적인 가치, 즉 정의, 민주주의, 평화, 평등, 공존 등의 가치를 총체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전후의 세계질서를 약육강식의 힘 관계로 전면화 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진보를 향해 치달아 온 인류문명의 퇴보를 의미한다.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발생했던 사막의 모래폭풍우를 이라크인들은 신의 노여움이라고 믿고 있다.
프로필
△영국 서섹스대학교 박사(도시 및 지역학) △현재, 단국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사)한국도시연구소 소장 △한국공간환경학회장 △(사)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장 △(사) 환경과 생명 편집장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 △경기도도시계획위원 등 △행정자치부 공익사업평가위원 등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 위기', '녹색사회의 탐색', '현대사회의 도시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