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13일 오후. 선물보따리를 들고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석 연휴가 다가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나 무더운 나날이었던가?

비가 내린 서울 거리는 뜨거운 대지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제법 시원했다.

비(雨)- 유난히 비를 좋아한 일본의 유명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김난주 譯/ 소담출판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비를 좋아해서, 비가 내리면 비를 본다. 창문을 열어 놓고 바라본다. 빗소리를 듣고 비의 내음을 맡는다….낯 잊은 풍경이 비에 젖는 모습을 본다. 빛나는 아스팔트, 낮게 가라앉은 하늘, 물기를 듬뿍 머금고 이파리 하나 하나를 떠는 나무…>

비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필자가 비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날의 비는 작가의 표현처럼 낮게 가라 앉은 하늘과 물기를 머금고 떠는 이파리들의 모습이 기분 좋게 눈에 들어 왔다. 멀리 관악산의 모습이 구름 속에서 아련히 나타났고, 낮 익은 풍경 신림동의 ‘별빛 내린천’의 물이 속도를 내서 한강으로 달려갔다.

K(69) 씨와 함께 찾은 목적지는 10여일 전에 갔던 앵무새가 재롱을 떠는 장수식당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단합대회를 하자’는 취지였다. 이곳의 재래 시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과일과 야채, 나물, 생선들이 풍성한 추석을 예고하고 있었다.

시장통의 골목길을 돌아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데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필자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자 마자 두리번두리번 앵무새를 찾았다. 식당의 단골 손님인 김창열(67) 씨가 식당 구석에서 졸고 있는 앵무새를 불렀다.

“장군아! 이리 와!”

(사진: 김창열 씨의 볼에 뽀뽀를 하는 앵무새)

꽁무니를 빼던 앵무새가 꼬리를 흔들면서 다가 왔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김창열 씨와 앵무새의 묘기 대행진이 이어졌다.

“장군아! 뽀뽀!”

그러자 앵무새가 그의 볼에 뾰쪽한 부리를 갖다 댔다.

“장군아! 커피 줄까?”

김 씨가 쟁반 위에 봉지 커피를 쏟자 앵무새는 설탕을 밀어내고 커피만 먹었다.

“저놈이 당뇨가 무서워서 설탕을 안 먹네?”

(사진: 커피를 먹는 이름이 '장군'인 앵무새)

과묵한 C(72)씨가 거들어서 웃음보를 터트렸다.

“이 앵무새가 어떤 종이지요?”

필자의 질문에 눈치 빠른 P(63) 씨가 앵무새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더니 검색 창에서 앵무새의 신상털이에 들어갔다.

“종류는 퀘이커앵무새입니다.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Monk Parakeet’라고 부릅니다. 몸길이는25-30cm, IQ는 약 30정도입니다.”

(사진: 식탁 칸막이에 앉은 퀘이커앵무새의 근엄한 모습)

퀘이커는 떨림(Quaker)이며, 머리를 부르르 떨거나 날개를 파닥파닥거리면서 떠는 특성이 있다.

앵무새 중 드물게 둥지를 짓는 습성이 있으며, 야생에서는 큰 무리가 공동으로 사용되는 둥지를 짓는다. 나뭇가지 등을 새장에 넣어주면 둥지 비슷한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수명은 25~30년 정도다.

중형 앵무새 중에서 사람의 말을 가장 잘 따라 한다. 종류마다 다르지만 적당히 애교가 있다. 소리는 큰 편으로, 110데시벨을 넘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쉬지 않고 끈질기게 운다. 블루퀘이커, 그린퀘이커가 주를 이루며 색이 연한 오파린퀘이커, 시나몬퀘이커, 팔리드퀘이커, 폴리디노퀘이커가 있다. 분양가는 40만-50만원 정도다.

남미가 원산지인 앵무새이지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처럼 남미 남부의 온대지방까지 서식하기 때문에 온대기후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유럽의 스페인에서는 아시아 출신인 목도리앵무와 함께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의 앵무새다(위키피디아).

식당 주인(63)이 음식을 내어오면서 가세했다.

“6년 전의 일이지요. 제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을 때 아이들이 거금(?)을 주고 사왔어요. 그야말로 영특한 반려동물입니다. ‘사랑해!’도 하고요. 개나리, 진달래도 합니다. 그리고, ‘산토끼! 토끼야!’’도 제법 잘 부릅니다.”

앵무새를 넘어 사람 사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안 테이블 위에 놓여지는 장수 막걸리가 불어났다.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축복의 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