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Blue)·코로나 레드(Red)에 이어 ‘코로나 장 발장(Jean Valjean)’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생활고 끝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라면·빈 병 3만 원어치 훔친 남성…법원 ‘선고유예’

▴고시원 달걀 한 판 훔친 남성…‘생계 고려 징역 1년’

언론에 보도된 ‘코로나 장발장’ 범죄에 대한 사례다. 죄는 밉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생계형 범죄라는 것을 감안해서 법의 판결도 온정적으로 흐른 듯싶다. ‘올 상반기에 절도나 사기(詐欺)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 5천 건 넘게 증가했다’는 뉴스도 안타깝다.

이러한 유형(類型)의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을 위한 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배고픔으로 인한 순간적인 충동으로 라면이나 달걀을 훔치다가 나락(奈落)으로 떨어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속의 ‘장 발장’

(사진: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1)

‘코로나 장 발장’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55)의 소설 ‘레 미제리블(Les Misérables)(송면 譯)’을 다시금 펼쳐봤다.

장 발장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누이 밑에서 자랐다. 27세가 되었을 때 일곱 자녀를 둔 누이가 남편을 잃었다. 이제는 장 발장이 가장(家長)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먹여야 할 빵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들일이나 품일이나 농장의 소몰이, 농사일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했다. 누이는 누이대로 벌이를 했으나 아이를 일곱이나 거느리고서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혹독한 겨울이 왔다. 집에는 빵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한 조각의 빵도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데도.>

(사진: 레 미제라블의 전반부 무대)

장 발장은 빵을 훔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 ‘파브롤’ 교회 앞의 광장으로 향한 빵집 주인 ‘모베르 이자보’가 막 잠이 들려고 했다. 가게의 창살 달린 유리 진열장이 ‘쨍그랑!’ 하고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마침 그때,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깨트린 구멍으로 팔 하나가 들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팔은 빵 하나를 훔쳐가지고 나갔다...그것은 바로 장 발장의 팔이었다.>

형식적 법전(法典)의 규정...세상에서 버려지는 순간

1795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 발장은 ‘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하여 도둑질한 죄’로 재판관 앞에 끌려 나갔다. 판결은 유죄였다.

<장발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전(法典)의 규정은 형식적이었다. 우리들의 문명에 있어서도 두려운 시기가 있다. 형벌이 인생의 파멸을 선언하는 시작이다. 사회가 멀어지고 하나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재기(再起)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서 버려지는 순간, 아! 아! 그것은 얼마나 저주스러운 순간이런가. 장 발장은 5년의 징역 형을 받고 항구의 감옥(교도소)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장 발장의 파멸은 오랜 세월 동안 반복의 연속이었다. 여러 번의 탈옥과 반항으로 도합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1815년 10월 석방됐다. 빅토르 위고는 그의 절망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장 발장은 흐느끼고 떨면서 항구의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무감동한 인간이 되어 거기서 나왔다. 절망하면서 들어갔다가 침울해서 나왔다. 그 영혼 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가?>

작가는 그의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반추(反芻)한다.

<그때 만약 달라고 했더라면 아마도 그 빵은 거절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인정에 호소한다든가 스스로 노동을 한다든가 해서 빵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범인의 죄보다 법률의 형벌이 앞섰다?

장 발장이 소설 속에서 되뇌는 자신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는 우리가 짚어봐야 할 교훈이 있다.

<이 숙명적인 사건에 있어서 잘못은 자기 한 사람에게만 있었던가? 첫째, 좋은 일꾼인 그에게 일자리가 없었고, 근면한 그에게 빵이 없었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니었던가? 둘째, 잘못이 저질러지고 자백을 했지만, 형벌은 가혹하고 도가 지나치지 않았던가? 범인의 죄의 정도보다도 법률의 형벌 쪽이 앞서지는 않았던가?...>

장 발장은 본디 나쁜 성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19년 동안 고역과 천대를 받으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웠다. 심지어 하늘의 섭리(攝理)마저도 스스로 심판했다.

<장 발장은 나쁜 성질의 인간은 아니었다.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직 좋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사회를 비난하고, 자기 스스로 악해졌음을 느꼈다. 거기서 그는 하늘의 섭리를 비난하고, 자기 스스로 불신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한 편으로 빛이 스며들고, 한편으로는 어둠이 들어왔던 것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사진: 빅토르 위고-2)

<사회의 땅은 때로는 선(善)을, 때로는 악(惡)을 파내기 위해서 가는 갱도(坑道)가 파져 있다...종교의 갱도가 있는가하면 철학의 갱도가 있고, 정치의 갱도가 있는가 하면 경제의 갱도, 혁명의 갱도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사상을, 어떤 사람은 수학을, 어떤 사람은 분노를 곡괭이로 파들어 간다. 이 동굴에서 저 동굴로 사람들은 서로 부르고 또 대답한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들 갱도를 통하여 지하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유토피아는 사방에 가지를 뻗쳐간다. 때로는 서로 만나 손을 잡기도 한다...때로는 유토피아와 유토피아가 서로 땅 속에서 싸우는 때도 있다.>

빅토르 위고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주고 그들을 교화하여 만인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레 미제리블(Les Misérables)’이라는 제목은 ‘가난에 허덕이고 수치스러운 생활이나 행위를 하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란다.

우리의 주변에 이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추운 겨울이다. 그들이 ‘장 발장’이 되지 않도록 모닥불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야 한다. 사회는 내편·네 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동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