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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이면 생각나는 일본인...아사카와 다쿠미
-임업은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2020년 04월 06일 (월) 10:11:37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망우리 공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1-1931)의 공덕의 묘(淺川巧功德之墓)에 있는 비문이다. 묘지 오른 쪽에는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도자기 형상을 본뜬 석조물이 서있다.

그의 89주기를 맞아 추모화환들이 놓여 있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수림문화 재단 유진룡 이사장, 문화재청 정재숙 청장 등이 보내온 화환이었다.

   
           (사진: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지)

해마다 추모식을 개최하는 아사카와 노리타가·다쿠미형제 현창회(회장 조만제)에 의하면 올해는 코로나19로 추모식을 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추모화환이 아사카와 다쿠미의 영혼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는 일제 강점기 시절 임업시험장 재직 중 시험 연구 분야에 여러 중요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했고 불운한 한국인을 도와주는 등 당시 한국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다쿠미(巧)는 한국인을 가장 인격적으로 대우해 준 특별한 일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쿠미는 조선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한복을 입었다.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진급에 관심이 없었다. 단지 양묘(養苗) 그 자체를 좋아했고, 또 그 일에만 열정을 쏟았다.

‘어떻게 하면 황폐된 조선의 산이 푸르게 될 수 있을까?’

“자연은 항상 나쁜 것 속에 좋은 것을 감추고 있다. 고통 뒤에는 즐거움이 온다. 이렇듯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는 자연의 원리를 산업에 적용한 것이 바로 재활용이다.”

그가 제시한 답이다.

사람들이 자연의 좋은 것을 외면하다가 화(禍)를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쿠미가 하는 일 중에서 큰 몫을 차지했던 것이 또 있었다. 다름 아닌 전국 순회강연이었다.

   
(사진: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입업의 구상/다쿠미 고향 자료관에서 촬영)

그는 아직은 추운 이른 봄 2월부터 3월에 걸쳐 전국을 돌며 양묘법(養苗法)에 대해 강연을 하고 다녔다. 2월 17일 부산, 3월 12일 충북 청주에서 강연을 하고 3월 15일 경성(서울)으로 돌아왔을 때 감기에 걸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3월 18일 감리교 서부 집회에 참석했고, 3월 26일 전국 각지에서 촬영한 양묘에 대한 사진 자료로 전시회를 열었다.

안타깝게도 전시회를 연 다음 날인 3월 27일 급성 폐렴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요즈음이라면 코로나19 확진자로 분류됐을 것이다. 1931년 4월 2일 밤 다쿠미는 이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겨우 40세였다.

다쿠미의 장례식은 4월 4일 임업시험장 앞 광장에서 치러졌다. 그가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기에 장례식은 경성 감리교회 다나카(田中) 목사가 주재했다. 성경 낭독에 이어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선인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통곡했다. 그만큼 다쿠미는 조선인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사랑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추도문이다.

   
(사진: 야나기 무네시와 아사카와 다쿠미의 인간관계도)

<아사카와 다쿠미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손실입니다. 다쿠미 만큼 조선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일본인을 저는 달리 알지 못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들로부터 진심어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특히 다쿠미의 인간적인 면을 존경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만큼 도덕적인 성실함을 지닌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매력은 그의 순결한 영혼이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은 생애 동안 그의 뜻을 잇고 싶습니다. 그의 육신은 죽었지만 제 마음 속에 살아있는 그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쿠미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본인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이다. 소다(曾田)는 아사카와 다쿠미의 장례식에서 성경을 읽은 사람이다. 그 역시 마포구 합정동(合井洞) 양화진(楊花津)의 외국인 묘원에 잠들어 있다

한일 관계는 이러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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