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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영원(永遠)의 실제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
2019년 12월 05일 (목) 10:36:27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박열·가네코 후미코·후세 다쓰지 변호사
 
“기념관 단지 내에 가네코 후미코 님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박열 선생의 추모비

박열의사기념관 오지훈(32) 학예연구사의 안내를 받아서 가네코 후미코의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목 공원에 ‘의사박열선생추모비’가 우뚝 서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문을 읽어봤다.
 
“애국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一身의 安危가 걸려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日帝에게 강탈당한 祖國을 되찾기 위하여 救國의 先鋒에서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義烈鬪爭한...”
 
추모비에 쓰인 말들이 구구절절 옳았다. ‘말로는 애국을 한다’고 외치면서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추모비를 지나자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묘지가 나왔다. 안내문에는 오른 팔로 턱을 고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슬픈 모습의 흑백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묘’라는 제목으로 쓰인 글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묘지

   
가네코 후미코의 묘지


<이곳은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연성을 주장한 아니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명 朴文子)의 묘이다. 그녀는 1922년 3월 도쿄에서 박열(朴烈)을 만난 뒤 재일조선인 아나키즘 항일 운동에 투신, 朴文子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옹호하고 일제의 탄압 정책을 비판하였다...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았으며,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1926년 7월 23일 자유를 찾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문경시와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훗날 北에 있는 박열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현 위치에 묘역을 조성해 두 분의 자유·독립 정신을 후세에 전할 계획이다.>
 
안내문의 글이 파란만장한 가네코 후미코의 인생사를 알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쓰인 글 중 사형 선고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자유를 찾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부분이 애처롭고 슬펐다.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이정숙 譯)의 마지막 문장은 자살을 암시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없어지겠지. 하지만, 모든 현상은 현상으로서는 소멸되지만 영원의 실제 속에 존속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냉정한 마음으로 이 조잡한 기록의 붓을 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위에 축복 있으리.>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80-1953) 변호사-
 
가네코의 수기에 담긴 글처럼 비록 현상은 소멸되었을 지라도 그들은 영원(永遠)의 실제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되돌아본 1926년 7월 23일의 상황
 
“가네코 후미코가 감방에서 자살했습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

1926년 7월 23일 오후 4시. 야마나시(山梨)에 살고 있는 가네코의 모친은 우쓰노미야(宇都宮) 형무소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놀란 모친은 29일 도쿄의 후세 다쓰지 변호사를 찾았다. 후세(布施) 씨가 출장 중이었으나 바로 연락이 닿았다. 후세 변호사가 신문사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앞을 다투어 가네코의 죽음에 대한 보도를 하게 되었다.
 
<23일 오전 6시 반 전후 독방에서 자살했다. 며칠 전부터 우울증으로 자살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 간수를 붙여두었지만 잠깐사이에 붉은 끈을 창문 철봉에 매고 액사(扼死)한 것이다. 시체는 수인(囚人) 묘지에 몰래 매장하고 인수를 고후(甲府: 야마나시 현에 있는 지역 이름)의 모친과 교섭 중이다.>
 
1926년 7월 31일자로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한 가네코의 죽음에 대한 기사다. 후세 변호사는 가네코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에 의문을 품고 줄기차게 시신의 부검을 요구했다. 형무소에서는 일관되게 거부하다가 결국은 허용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시신 발굴을 허용합니다.”
 
우쓰노미야 형무소장의 결정으로 가네코의 시신 발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었다. 우마시마(馬島) 의사가 그녀의 시신을 부검했으나 죽은 지 7일이나 지난 관계로 정확한 사인(死因)을 밝히지 못한 채 화장을 해야 했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현창비(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

 
동지들은 가네코의 유골을 후세 변호사의 집에 안치했다. 10여 명의 경찰들이 동원돼서 후세 변호사의 집을 포위하고 감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추모 행사는 경찰에 발각됐고, 가네코의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구금되기에 이르렀다. 가네코의 유골은 1926년 8월 29일 소포 형태로 부산에 보내졌고, 11월 5일 박열의 선산인 문경군 신북면에 매장됐다.
 
당시 경찰은 조선의 동지들이 대대적으로 장례식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박열의 형과 동생, 단 두 명만이 추모식을 하도록 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하기 그지없는 가네코의 일생이다.
 
‘세상을 위해 가시밭길을 연 선각자’
 
한 시대를 풍미하던 후세 다쓰지가 잠들어 있는 도쿄의 묘지는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불과했다. 묘지에서도 소박한 그의 품성이 느껴졌다. 필자는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묘지에 ‘조선인들을 보살펴 준데 대해 감사드린다’는 감사의 기도를 했다.

   
후세 변호사를 위한 노래비

“세상을 위해 가시밭길을 연 선각자 여기에 잠들었나니.”
 
묘지 옆에 가수 야나기와라 뱌쿠렌(柳原白蓮, 1885-1967)의 노래비(歌碑)가 있었다. 비에는 ‘후세 변호사의 3주기인 1955년 9월에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키다 우쟈쿠(秋田雨雀, 1883-1962)와 정치인 오야마 이쿠오(大山郁夫, 1880-1955) 등이 세웠다’고 쓰여 있었다.
 
비에 쓰인 대로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평생 동안 세상을 위해서 누구도 가지 않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열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다.
 
사찰의 작은 정원에 ‘납매(臘梅)’라는 보기드믄 매화 한 그루가 있었다. 1605년에 창건된 조자이지의 400주년 기념 법요식에 심은 나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납매’는 일반의 매화가 피기 전 먼저 꽃을 피운다. 그래서 12월에 피는 매화라고도 한다. 송나라의 시인 진사도(陳師道, 1053-1101)는 ‘납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一花香十里(일화향십리)
 更値滿枝開(갱치만지개)
 承思不在貌(승사불재모)
 誰敢鬪香來(수감투향래)
 
 한 송이 꽃향기 십리를 가니
 흐드러지게 피는 꽃보다 낫도다.
 사랑 받는 것이 모습에 있지 않으니
 뉘라서 감히 향기를 다투리오.
 
 후세 다쓰지 변호사에게 어울리는 시(詩)일 듯싶다. 그의 향기와 다툴 사람이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납매’의 꽃말도 ‘자애’로 알려져 있다. ‘후세 다쓰지의 자애로움도 ’납매‘의 향기와 견주어 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자이지(常在寺)를 나섰다. 빌딩 숲 도쿄의 가을도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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