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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신오쿠보 역의 전설 이수현, 죽어서도 한일 가교 이어가
2019년 11월 04일 (월) 16:07:17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한국인 유학생 이 수현(李秀賢)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關根史郞)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 경, 신오쿠보(新大久保)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
 
한국어와 일본어로 쓰인 도쿄 JR신오쿠보(新大久保)역의 벽면에 단정하게 붙어 있는 초록색 동판의 글이다.
 
이름 하여 ‘위령의 동판’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는 당시 이 사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의인 이수현과 세키네 시로의 가족에게 감사패를 수여함과 더불어 ‘위령의 동판’을 설치했다. 18년이 지난 오늘 출퇴근 길에 ‘위령의 동판’을 쳐다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쁜 일상에 쫓기기도 하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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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이수현 추모비를 찾은 이낙연총리(사진: 연합뉴스)
 

지난 22일 일본을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JR신오쿠보역에 있는 이수현 의인의 추모비를 찾아서 헌화하고 고인의 희생을 추모했다. 필자는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그의 아름다운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시 추도식에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를 비롯해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자민당 간사장 등 정계 거물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모리 총리는 “한일 관계를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라고 들었는데 의로운 일에 목숨을 잃게 돼서 안타깝다”며 “이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일본 젊은이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이수현의 흔적을 찾아서 부산으로
 
필자는 지난 주말 이수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부산으로 향했다. 서울역을 빠져나간 기차는 순식간에 한적한 농촌의 가을 벌판을 질주했다. 논밭의 ‘노랑’은 저절로 ‘결실’을 떠오르게 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밭보다는 노랑물결 가득한 곳이 더 좋아보였다. 뭔가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차창 밖의 산하(山河)는 경쟁하듯 빨강·노랑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나 아직은 초록이 우세했다.
 
부산역에서 내려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로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주말이어서 인지 사람도, 차량도 가득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학생문화회관 앞 광장으로 갔다. 행사를 하는 관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왁자지껄 소란했으나 이수현의 추모비는 이들의 소음에 귀를 막은 듯 의연하게 서 있었다. 이 비는 이수현을 기리기 위해 2001년 5월 24일 부산광역시와 부산광역시 교육청이 세웠다. 비에는 추모의 글과 이수현의 삶의 흔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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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故 이수현씨의 추모비
 

추모의 글이다.
 
<이수현 님은 2000년 1월 일본 도쿄에서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에 유학 중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선로 위에 떨어진 사카모토 세이코를 구출하려다가 달려오던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아깝게 숨졌다. 이기심이 만연해 가는 이 세상에서 이타심의 본보기가 된 이수현 님의 이 같은 의로운 행동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실천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참다운 시민 정신을 일깨워 준 고귀한 희생이었다. 순간을 던져 영원을 얻는 그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남아 의로운 삶의 등불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이수현 님은 평소 공부와 일을 즐겁게 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였고, 고난과 역경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언제든지 헤쳐 나갈 용기를 지닌 훌륭한 청년이었다. 꽃다운 나이 스물여섯에 의롭게 숨진 이수현 님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 꿈나무들의 배움터인 부산 학생교육문화회관 양지바른 앞뜰에 추모비를 세운다.>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이 한국과 일본의 우호 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젊은이들에게 남을 위한 희생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육적 의미도 있어 보였다. 추모비 앞에서 모친 신윤찬 (69)씨를 만났다. 신 씨는 양손에 물통을 들고 있었다. 추모비 앞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수현 모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아! 먼저 오셨네요. 주말이라서 차가 좀 막히더군요.”
“매일 오셔서 이 화분에 물을 주시나요?”
“아닙니다. 매일은 못 오지만 자주 오는 편입니다.”
 
이수현 씨의 모친은 표정도 넉넉했고 목소리도 맑았다.
 
“신오쿠보역에서 사고를 당한 지가 어느 덧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긴 세월 저희 아들을 잊지 않고 기려주신 한국과 일본의 많은 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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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앞 화분에 물을 주는 이수현씨 모친
 
신윤찬 씨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아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추모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부터 했다. 화분에 물을 뿌리면서 어떠한 생각을 할까.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정?’ ‘목마른 아들에게 목을 축이라고 물을 주는 마음?’
 
그 심정을 물을 수가 없었다. 아문 상처를 덧나게 할 것 같아서다. 필자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질문을 했다.
 
► 수현 군의 어릴 적 성품이 어떠했나요? 사진을 보면 항상 밝아 보이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밝고 매사 긍정적이었습니다. 칭얼대거나 보챈 적이 없었어요. 여동생과도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오히려 저를 가르쳤어요. 경상도 말로 ‘이놈의 자석...’ 욕을 하려고 하면 ‘엄마! 나쁜 말은 엄마 귀에 먼저 들려요.’ 하면서 저의 입을 막아버린 아이였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든지, 담배꽁초를 버리든지 하면 그 사람의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엄마! 저사람 불쌍해!’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독학으로 자기 스스로 했습니다. 기타도 혼자 배우고, 자전거도, 컴퓨터도 스스로 익히고 그것을 자료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답니다. 제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참으로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그렇군요. 타고난 성품이 ‘착함’ 그 자체였군요. 수현 군의 사고 소식은 언제 들으셨고, 그 때의 심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잘 아시겠지만 사고는 그날 저녁 7시 15분경이었죠. 저희야 한국에 있으니까 바로 알리가 없었죠. 일본에서 사고 소식이 TV를 통해서 보도가 나갔지만 신원확인이 안 되었나봅니다. 아이가 다니던 아카몬카이학교가 부산에 사무소가 있었거든요.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새벽 1시 쯤 거기에서 전화가 걸려 왔어요. 아이 아버지가 전화를 끊더니 ‘수현이가 크게 다쳤다네. 빨리 일본에 가봐야겠다.’ 하시더군요. 아이가 죽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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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씨가 사고 당한 날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잠시 멈춘 신윤찬 씨
 

►그래서 바로 일본으로 가셨나요?
 
“네. 서둘러서 일본으로 갔습니다. 나리타(成田) 공항에 내렸는데 어찌나 많은 눈이 내렸든지...일본에서도 몇 십 년만의 폭설이라고 난리더군요. 공항에서 신주쿠에 가는데 기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군요. 눈(雪)까지 저희부부의 속을 태웠습니다. 그래도 의술이 발달된 일본인데 설마 무슨 일 있겠느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주쿠에 내리자 병원으로 안내하지 않고 경찰서로 데리고 가지 뭡니까?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환자의 상태를 보러간 것이 아니라 신원확인의 절차를 밟은 셈이었지요.”
 
신윤찬 씨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그날의 아픔이 되살아났기 때문인 듯싶었다. 관계자들은 부모가 놀랄까봐서 충격 완충의 의미로 ‘크게 다쳤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터. 병원에서는 이수현의 상처를 치료한 것이 아니라 시신을 수습해서 꿰맞추는 수술을 한 것이다.
 
► 사고 후 일본인들에게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해서 더욱 감동의 물결이 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현 군이 왜 그러한 일을 했을까요?
 
“저는 불경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어찌 사람의 능력으로 다 되겠습니까?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겠지요. ‘인연법’이라고 할까요? 인간사 우연(偶然)이 없다는 것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것처럼. 불의의 사고라기보다 어떤 메시지 아니면 계시(啓示)라고 생각합니다. 무역학과를 다니던 아이가 한일관계의 우호에 앞장서고 가교의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고요.”
 
인생사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일까.
 
► 이수현씨 같은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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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는 이수현씨의 모친 신윤찬 여사
 
“글쎄요. 특별한 것은 없고요. 단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이 세상 어떤 일도 하찮은 것은 없다. 매사 헛 시간이 아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사회에게 감사하자.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산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쳐다보지 말고 자신의 앞만 보고 걸어라. 지금 이순간은 고된 것 같아도 사회에 나가면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당당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현이가 사고를 당하고 난 후 18년 동안 줄곧 생각해온 것입니다. 제 스스로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수현의 모친 신윤찬 씨는 물병에 남아 있는 물을 화분에 부으며 말했다.
 
“한국인이다, 일본인이다, 따지게 되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나라가 ‘양보와 배려의 공존’이랄까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웃나라가 잘 지내야 하니까요.”
 
시비(詩碑) '흐르는 소리'도 한 몫해
 
이수현 추모비의 건너편에는 시인이자 정치가인 정상구(1925-2005) 의 시비 <흐르는 소리>가 있었다.
 
“하늘 꽃 피는 아침노을 바라보면
내 마음 원형 되어  굴러 끝간데 없이
보이지 않는 지평 하나 되라 이른다.
 
맑은 바람 스쳐가면 웬일인지 웬일인지
탐욕과 삶의 추 훨훨 비리라 뇌인다.
 
아롱지는 햇살은 자애로운 열쇠련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두 손 모을
역사의 거울 은혜로운 빛이라 흐르는 소리.”
 
부산의 날씨는 서울보다 따뜻했다. 높고 푸른 하늘의 구름들이 두둥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현해탄을 건너는 하얀 구름들의 무리에서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역사의 거울 은혜로운 빛이라 흐르는 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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