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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
2019년 08월 01일 (목) 14:22:35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뒤죽박죽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상, 이를테면 비, 구름, 번득이는 벼락의 섬광, 갈라진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불꽃, 가라앉는 땅의 요동, 대지 위에서 벌어지는 어떤 격동도 아무리 갑작스러워도 계획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오. 이런 것들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법이오. 물속의 온천이나 넓은 바다에서 솟아오른 새로운 섬들처럼, 뜻밖의 곳에서 보게 되는 기적 같은 현상들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듯이 말이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의<인생론>(김천운 譯)의 첫 부분 ‘섭리(攝理)에 대하여’의 한 구절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한일 관계의 갈등을 보면서 <인생론>의  ‘섭리’를 들여다 봤다. 
 
‘기적 같은 현상도 이유가 있다’는 현인의 말을 떠올리며 차를 몰아 강변북로를 달렸다. 장마가 지나갔다고는 해도 간간히 비가 뿌렸고, 작금의 한일관계를 암시하듯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차의 흐름은 언제나처럼 더디었다.
 
파주의 하늘 묘원을 찾아서

목적지는 경기도 파주시 정문로에 있는 하늘묘원. 제2대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909-1997년)의 묘지가 있기 때문이다. 
묘역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으나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표지석이 작기도 했지만 거대한 폐기물 처리장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트럭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다. 

   
하늘 묘원 입구


“주님! 이곳의 모든 영혼들에게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드디어 커다란 안내판과 만났다. 묘역의 관리가 비교적 잘 돼 있었다. 하지만,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의 묘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리사무소도, 관리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관리 사무소의 연락처가 걸려 있었기에 전화를 걸었다.
 
“입구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정자가 하나 나올 것입니다. 정자 옆 황토길을 따라서 50미터쯤 가시면 가나야마 대사님의 묘지가 나옵니다.”
 
관리인은 친절했다. ‘가나야마 대사님’이라고 존칭을 붙인 것도 남달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묘역이 더 넓었다. 곳곳에 성모마리아 상(像)과 각기 다른 이름, 업적들을 새긴 묘비와 묘지들이 저 멀리 구름과 산들을 바라보며 담소하는 듯했다. 태풍이 지나가는 발걸음일까. 거센 바람이 키 큰 나뭇가지들을 세차게 흔들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지 않아요.
   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시(詩)를 읊조리면서 황톳길 언덕을 올랐다.
 
소나무, 떡갈나무, 아카시아 나무, 길가의 산딸기나무들과 눈을 맞추며 걷는 순간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더운 날씨인데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수풀사이로 비석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의 묘지
 

   
가나야마 대사의 묘지와 비석

 第二代駐韓日本國大使
金山아우구스티노政英님의 무덤

검은 바탕의 돌에 또렷하게 새겨진 묘비석이 묘지 옆에 서 있었다.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사람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묻혀 있는 사연이 무엇일까. 묘비석에 쓰여 있는 글을 자세히 읽었다. 장문이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이 무덤의 주인공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님은 1909년 1월 24일 일본국(日本國) 도쿄도(東京都) 세다가야구(世田谷區)에서 육군 장성의 자제로 태어났다. 일찍이 국립동경대학정치학과에 재학 중 가톨릭에 귀의하여 그의 천성이라고도 할 박애주의적 세계관과 인간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34년 학업을 마치고 같은 해 국가공무원 상급 시험 외교과에 합격하여 바로 외교관으로 출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재공관의 서기관으로 일하다가 42년 바티칸 일본 사절관, 참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중과 종전 후를 합쳐 10년간이나 바티칸에 머물면서 그의 독실한 신앙생활과 성실한 인간성으로 교황 바오로 12세를 비롯한 성청 내 여러 성직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사서 전후 일본의 전범처리와 평화 재건문제 등에 전폭적 지원을 받음으로써 크게 공헌한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52년에는 대리공사로 임명되었고, 곧 다시 연합군의 일본 전범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주재 참사관으로 전보되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바티칸의 엄호로써 전범 석방에 혼신 노력하여 53년 필리핀독립 기념일에는 전원 사면과 석방이라는 특사를 얻어내어 국내외에 경탄과 칭송을 받았다. 그 뒤로 이어서 미국 호놀룰루 총영사, 외무성 유럽 아시아국장,  뉴욕 총영사, 칠레, 폴란드 대사 등으로 활약하다가 68년 한국대사로 전임되었다.

   
비문의 전문

당시 한국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추진 계획의 초기였는데 그는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그 정황을 소상히 파악한 후 한국산업 근대화에 국교적 차원을 초월하여 협력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의 각계각층의 인사와 인간적 친화를 통해 신뢰와 우애를 다져 나아갔다. 72년에는 4년간에 이르는 한국 주재를 마치게 되었는데 그는 귀국 후 파리주재 일본 관장 등의 직책을 제의 받았으나, 이를 물리치면서 “나는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일한양국 친선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아 앞으로 죽는 날까지 그 일에 헌신할 것이다”라고 하고, 이를 내외에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의 실천으로 73년 동경한국연구원 최서면(崔書勉) 원장을 찾아서 참여를 자원하여 동원의 이사로 취임함과 더불어 국제공동연구소를 병설하고 그 초대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한일관계의 친화를 굳히는데 힘을 기우리고, 아울러 한국의 국제적 선양에 이바지하였다.
 
이렇듯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여 마지않던 그가 97년 11월 1일 이승을 떠나니 향년 88세였다. 평생에 추구하고 실천한 가톨릭 적 박애주의의 완수, 그것이 곧 그의 생애이었다. 고인은 생전 유족에게 거듭 “나의 시신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뒤 유족을 비롯해 이제까지 그를 그리고 기리는 한일 양국 간의 친지들이 이렇듯 여기에 무덤을 짓고 우정의 징표로서 돌 하나를 세우는 바이다. 1998년 8월 28일. 글 具常, 글씨 金端喜>
 
필자는 “나의 시신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는 대목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일 관계는 어떠한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의 유언(遺言)을 지키지 못하고
유언(流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문에 새겨져 있는 이름, 최서면 원장이 보는 가나야마 대사의 역할은 어떠했을까?

   
최서면 원장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이듬 해 3월 기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 처음으로 주한 일본 대사로 부임했죠. 그리고, 약 2년 후인 1968년 7월 15일 가나야마(金山政英)씨가 제2대 대사로 한국에 왔습니다...1972년 2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한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대사입니다.”
 
최서면(91) 원장은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최 원장은 58년부터 30년간 도쿄에 체류하면서 한국연구원을 설립했다. 가나야마 대사와 형제처럼 지낸 최 원장은 “포항제철은 박 대통령과 박태준씨가 주도했으나, 가나야마(金山政英) 대사의 숨은 공로가 대단했다”고 덧붙였다.
한일관계의 우호증진을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던진 공로자들이 많다. 가나야마 대사가 그렇고, 일본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지하철에 뛰어든 故 이수현씨가 그러하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반목(反目)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나가자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이들이 지하에서 편하게 잠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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