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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요?”
2018년 09월 12일 (수) 09:50:04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진실을 알리려는 일본인들의 작은 외침을 듣다.
 
나가사키(長崎) 역에서 언덕길을 오르면 26성인(聖人) 순교지가 나온다.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에 의해 가톨릭 신자 26명이 화형을 당한 곳이다. 거기에서 오고가는 자동차와 마주치며 소로(小路)를 따라 50미터쯤 가면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작은 건물과 만날 수 있다. 다름 아닌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이다. 공식 명칭은 ‘오카마사하루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이끈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1918-1994)’ 목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료관의 설립 취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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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자료관

<전쟁과 원폭의 비참함을 깊게 가슴에 새기고, 그 기억이 풍화(風化)되지 않도록 시민의 손에 의해서 설립된 특정 비영리(NPO) 법인에서 운영되고 있는 평화 자료관입니다. ‘나가사키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반세기를 거쳐 아무런 보상이 없었던 외국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고발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목사이며, 시의회 의원이었던 故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씨의 유지(遺志)를 잇는 것입니다. 이 자료관은 ‘사람들의 고통의 깊이를 알고, 마찬가지로 가한 고통의 깊이를 모르는 한(限) 평화를 구축 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설립 취지만 읽어도 ‘오카 마사하루’씨의 숭고한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필자가 오래 전 수박 겉핥기식으로 스쳐간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이 자료관을 둘러봤다. 자원봉사자 기무라 히데토(木村英人·74)씨를 만났기 때문이다. 기무라(木村)씨의 말이다.
 
“오카 마사하루님은 목사로서도, 시 의원으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언제나 약(弱)한 사람들의 편에 섰습니다...이 자료관은 기적적으로 세워졌습니다. 당시 토지도, 건물도 없었지만, 그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오카(岡)님이 하늘나라에서 이끌고 있는 것처럼 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5년의 일입니다.”
 
‘일본 침략역사 제대로 청산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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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기사

필자는 자료관에 전시된 2010년 5월 6일자 부산일보 기사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가사키대학 명예교수이자 평화자료관 이사장인 다카자네 야스노리(高實康稔)씨가 합천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인터뷰한 기사였다. 신문기사와 함께 일본어로 번역된 글도 나란히 부착돼 있었다. 일본정부의 냉대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평화자료관은 정부의 냉대 속에서 운영되어 왔다. 전체 학생의 1%에 해당하는 3천-4천 정도다. 비록 방문객이 적지만 대부분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격려를 남긴다...1%로가, 앞으로 10%가 될 수 있다. 만약 1%미만이라고 해도 우리의 뒤를 이어나갈 양심들은 나올 것이다.>
 
다카자네 야스노리씨는 뒤를 이을 ‘양심들’에게 바톤을 넘기고, 지난해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울산운동본부’의 현수막도 있었다.
 
‘역사의 진실을 지켜온 다카자네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조선인의 인권을 지켜온 선생님의 삶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카자네(高實)씨는 군함도가 조선인 강제 동원의 역사를 배제한 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비판한 사람이다. 그의 뒤를 이어서 나가사키대학 명예교수인 소노다 나오히로(園田尙宏·73)씨가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좁디좁은 이 자료관은 ‘일본은 아시아에서 무엇을 했을까’란 테마로 대동아전쟁도(大東亞戰爭圖) 등을 전시하고 있었고,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피폭(被暴)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알리고 있었다. 일본의 황민화, 위안부, 남경대학살, 731부대 등에 대한 사진과 자료도 많았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필자는 일본어판 군함도에 관련한 책을 사려다가 한글판이 있어서 한 권 구입했다. 제목은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선인). 저자는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번역 박수경·전은옥 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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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와 조선인 강제 연행에 대해서 설명하는 기무라씨

필자는 번역서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을 들고서 기무라(木村) 씨를 따라갔다. 그는 군함도(端島) 탄광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희생자 명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를 보세요. 그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이 이렇게 다 있습니다. 황옥수 경상남도 20세 익사, 김용우 27세 강원도 외상에 의한 척추 마비, 노치선 황해도 16세 리졸(Lysol) 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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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망자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하는 기무라씨
기무라(木村)씨는 서정우(徐正雨, 1928-2001)씨의 증언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다.
 
“서정우씨의 증언은 1983년 7월 군함도(하시마)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원폭과 조선인> 제2집과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에 자세하게 쓰여 있습니다.”
 
자료를 통해서 그의 증언을 들여다봤다.
 
<저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면에서 소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부산에서 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下關)까지 이동했습니다. 나가사키에는 야간열차로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끌려온 사람은 300명 정도였고, 전원이 오하토(大波止)에서 종착지인 하시마로 이동했습니다...이 바다 밑이 탄갱입니다. 승강기를 타고 수직갱도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아래쪽은 석탄이 착착 운반되어 넓지만, 굴착 장으로 가면 엎드려서 파낼 수밖에 없는 곳으로, 덥고, 고통스럽고, 피로한 나머지 졸음이 오고, 가스도 쌓이고 해서...낙반(落盤)으로 인해 한 달에 네다섯 명은 죽었을 겁니다. 죽은 사람은 하시마(端島) 옆 나카노지마(中ノ島)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서정우씨는 결국 미쓰비시(三菱)조선소로 이동해서 피폭을 당했고, 병든 몸으로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본에서 살다가 54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증언에는 평화에 대한 갈망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저는 건강이 많이 나쁘지만 차별 없는 세상,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기무라 히데토(木村英人) 자원봉사자와의 일문일답
 
필자는 73세의 나이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기무라(木村)씨에게 질문을 했다. 일본인으로서 자국의 과거 역사를 들춰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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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기무라씨
▴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계시고, 언제부터 하고 계시나요?
 
“자료관에서 한국인의 안내 등을 부탁한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자료관의 회원이기도 했고요. 2007년에 ‘스톤 워크-코리아(Stone Walk Korea: 1톤의 돌을 끌면서 평화 순례를 하는 모임)과 함께 한국에서 평화 행진을 했습니다. 부산-합천-하동-지리산-정읍-군산-평택-서울-임진각까지 갔습니다. 한국의 코디네이터가 ‘목이 약해서 오래도록 말을 못한다’고 해서 통역을 부탁했습니다. 대단한 한국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독학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터득한 지식으로 서투른 통역을 했습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소설을 통해서 한국어를 익히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소설이고, 언제부터 한국어를 하셨나요?
 
“제 나이 55세 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선생님은 일한(日韓)사전이었습니다(웃음). 소설의 제목은 김진명 선생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습니다. 그 후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읽었습니다. 2007년 지리산을 갔을 때 소설의 내용이 더욱 실감났습니다.”
 
▴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원래 어떤 직업을 가지셨고, 한국어에 어려움이 없으셨나요?
 
“저는 그리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40년 가르쳤습니다. 유학도 가본 적이 없어서, 영어 때문에 40년 내내 고생했습니다. 영어 듣기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잘 때도 단파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외국어에 대한 긴장감이 많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공부하면서부터 그 스트레스가 없어졌습니다. 한국어와 일어가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변에 영어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한국어를 해요. 그러면 영어도 쉬어질 것이다’라고 합니다.”
 
▴ 여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시면서 한일관계에 대해서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일본은 향후 아시아의 고아(孤兒)가 될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한국이 보다 민주적이고 멋진 나라가 되면, 일본 사람들도 본받지 않을까요? ‘한일 관계 개선은 가해자의 진실 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일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신 점은 무엇입니까?
 
“무직인 제가 최근 한국의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로부터 위촉패와 명함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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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씨가 받은 겨레하나 위촉장

기무라 히데토(木村英人)씨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위촉패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나가사키와 군함도 징용조선인의 고통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활동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을 겨레하나의 든든한 벗, 나가사키 명예 지부장으로 모십니다.>
 
자기 나라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서 진실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더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의 번역서(추천사)에서 밝힌 것처럼 그 날을 기다려본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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