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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인간의 야심을 뛰어넘는 큰 흐름이 있어
-교토(京都)의 혼노지(本能寺)에 얽힌 사연들
2018년 06월 25일 (월) 10:52:04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부터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大改造)에 의해서 화려하게 부활됐다. 곳곳에 산재되어 있던 사찰들이 강제적으로 이전되어 ‘데라마치(寺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필자가 ‘데라마치’를 찾았을 때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척 붐볐다. 필자의 방문 목적지는 혼노지(本能寺)였다.

   
혼노지 본관의 전경


오다 노부나가 최후의 사찰
 
“인생 오십년
 천하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가 즐겨 불렀다’는 노래다. 가사만으로도 전생으로 얼룩진 노부나가(信長)의 인생역정이 느껴진다. 알려진 바와 같이 혼노지(本能寺)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깊은 관련이 있다.

   
노부나가가 자결한 본노지의 표지석

<홋케슈(法華宗) 혼몬류(本門流)의 대본산으로 1415년 니치류(日隆上人)에 의해 창건되었다. 1582년 부하 장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1528-1582)의 습격을 받아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가 자결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 혼노지에는 30여개의 슈쿠보(宿坊: 절의 숙박시설)가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158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에 의해 이 장소로 옮겨져 재건되었다. 그러나 에도시대 후기의 덴메이(天明)·겐지(元治)의 대화재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 지금의 본당은 1928년에 다시 세워졌다.>
 
사찰의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지금의 혼노지는 화재를 겪으면서 윤회(?)한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오다 노부나가의 묘(廟)에 대한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최후를 맞았던 혼노지는 교토시 나카교구(中京區)에 있다. 골목길 건물 모퉁이에 ‘혼노지 흔적(址)’이라는 표지석 하나가 흘러간 역사의 무상함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혼노지(本能寺)의 변(変)'에 대하여
 
1582년 6월 일본의 역사를 또 한 번 바꾼 ‘혼노지의 변(変)’- 부하 장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반란을 일으켜서 ‘오다 노부나가’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裝八, 1907-1978)의 소설 <오다 노부나가>를 빌어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미쓰히데(光秀)는 ‘노부나가(信長)만 제거하면 천하가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인간의 야심 위에는 인간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커다란 역사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놈! 천하는 너 같은 자가 쉽게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노부나가는 언제나처럼 미쓰히데를 무시했다. 그가 왜? 주군을 배반했을까. 의문점이 많다.
 
일본의 기록이나 역사책에도 그 이유에 대한 설(說)이 많다. 하지만, 평소 노부나가의 말에 의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미쓰히데가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다든지, 수치심을 안기는 노부나가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 때문이었단다. 시쳇말로 상관의 ‘갑질’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기록은 없다.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노부나가의 목을 베어라. 그리고 날이 밝거든 그 목을 산조(三條)다리 밑에 효수하여 교토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외치면서 주군에게 칼을 겨눈 아케치 미쓰히데-그에게 동정표를 던지는 일본인들도 많다. '말에 의해 받은 상처가 컸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노부나가의 묘(廟)


결국 아키치 미쓰히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1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노부나가가 배를 가르고 그대로 침소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화염이 노부나가의 유해를 송두리째 삼켜 버려서다. 노부나가의 목을 거리에 내걸고 천하를 움켜쥐려던 미쓰히데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결론을 뒤로하더라도 ‘혼노지의 변’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들의 삶일 듯싶다.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의 연고의 땅(地)’

   
혼노지 입구에 있는 '조선통신사의 땅' 안내문


혼노지는 조선통신사와도 관련이 많다. 통신사들이 에도(江戶)로 가기 전 숙박을 하는 사관(使館)이었다. ‘조선통신사의 연고의 땅(地)’이라는 안내문에 눈이 쏠려서 자세히 읽어봤다. 간단한 글이었으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숙종 45년인 1719년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 1684-1751)가 8대 쇼군(將軍)직에 오른 것을 축하하기 위해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고, 조선은 이에 의해 사절단 475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중에서 346명이 혼노지에 숙박했다. 밤에는 이 절에서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통신사의 정사(正使)는 본당에 숙박했고, 렌쇼인(蓮承院)에는 상관, 기치죠인(吉祥院)은 통역관, 혼코인(本行院)은 오산(五山) 스님 등이 숙박했다...호위를 위해서 동행한 쓰시마의 소(宗)씨 등 일행과 그 외의 호위 일본인들은 혼노지의 주변의 사원이다 민가에서 분산 숙박했다.>
 
“장려(壯麗)함에 있어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도다.”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혼노지(本能寺)를 보고서 <해유록(海遊錄)>에 남긴 말이다. 실제로 <해유록>(김찬순 譯)에 담긴 글을 옮겨본다.
 
<성을 지키는 책임 관리자(松平忠周)가 봉행을 보내 우리 일행을 접대하였다...잠시 후 세 사신이 와서 사관(使館)에 들었다. 사관의 이름은 본능사(本能寺)라 하는데 건물이 크고 화려함으로 보아 그 어디와 비교해도 무적이었다(館名 本能寺 壯麗無敵).>

   
화려함을 느끼게 하는 혼노지의 본관

18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조선의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던 신유한이 ‘무적(無敵)’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장엄하고 화려(壯麗)했을까. 실제로 혼노지의 아름다움은 다른 사찰에 비해 화려하다.
 
신유한이 제술관으로 뽑혀서 일본에 가면서 그의 심정을 토로한 글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와 닿는다. 인생의 단면(斷面)이 깃들어 있어서다.
 
“나의 일생의 운명이 헛소문 때문에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가 하였다. 조물주가 나를 희롱하여 과거에 뽑힌 뒤로 백 가지 파란과 모욕과 고생을 갖추 겪었는데, 지금 또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득한 바닷길에 나서게 되었구나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겪을 재난이 가시지 못한 탓이어늘, 더 누구를 원망하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언행을 똑바로 하는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겸손한 자세야 말로 남의 오해를 불식(拂拭)시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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