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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추방당한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 이야기
2017년 08월 08일 (화) 13:35:12 장상인 발행인 renews@renews.co.kr

-국경을 넘나든 신앙인의 삶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필리핀으로 추방당한 일본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 1552-1615)이다.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은 당시 가톨릭 다이묘(大名)이자 크리스천의 리더 격이었다. 세례명은 ‘쥬스타’. 포르투칼어로 ‘정의의 사람, 의리의 사람’을 뜻한다.

‘그의 동상이 왜 마닐라에 세워졌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종교 탄압에 의해 일본의 가가(加賀)에서 숨어 지내던 우콘(右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크리스천 추방령에 의해 1614년 350여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일본 땅을 떠나게 됐다. 목적지는 필리핀의 마닐라. 긴 여행에서의 피로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마닐라 도착한지 40일 만에 생(63세)을 마쳤다. 1615년 1월 6일의 일이다.

마닐라의 플라자 디라오(Plaza Dilao)를 향해서

필자가 다카야마 우콘의 흔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사의 블랙박스를 열어보겠다’는 야심찬(?) 호기심으로 길을 나섰다.

어렵게 호텔 앞에서 택시 하나를 붙잡았다. 필자가 건네준 지도를 요리조리 돌리던 택시 운전사는 ‘약 7킬로미터의 거리다’고 했다. 운전사는 ‘차량 정체가 심하기 때문에 미터기를 끄고 둥쳐서 300페소(한화 6,750원)로 하자’고 제안했다. 필자는 대안이 없어서 무조건 수락했다. 택시는 도로의 정체를 피해서 골목길 중심으로 달렸다.

제법 오랜 시간 달리던 택시 운전사는 ‘이 근처입니다’라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짧은 말을 남기고서 줄행랑을 쳤다.

   
현지 노인의 정성스런 길안내-

필자는 다시 공원을 지키던 경비원에게 지도를 펼치고서 물었다. 그 역시 고개만 갸웃 둥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나이가 지긋한 한 노인이 필자에게 ‘따라 오라’고 손짓했다.
그의 수신호에 의해서 버스, 택시, 오토바이 등이 모두 멈췄다. 필자는 노인을 따라서 의기양양 도로를 건넜다.

“바로 여기입니다. 일본인의 동상입니다.”

다카야마 우콘-그의 동상은 고가도로 공사 현장 밑에서 천을 칭칭 감고 서 있었다. 화상(火傷)을 입은 환자에 다름없었다.

   
다카야마 우콘의 동상(현재)
   
다카야마 우콘의 공사전 원래모습(사진: 야후재팬)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고 말아-

참으로 허탈했다. 제대로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소를 알리는 표지 석은 어떠한가. 높은 울타리 속에서 다가올 새로운 운명을 마냥 기다리는 듯했다.

‘아!....’

필자의 한숨.

‘400년 전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조국을 떠나야했던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거룩한 뜻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구나.'

‘역사는 이렇게 현대인의 논리를 따라 흘러가는 것일까.’

필자는 생각을 거듭하면서 플라자 디라오(Plaza Dilao)를 벗어났다.

공사 현장의 굉음(轟音)은 점점 높아졌고,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동상은 점점 낮아졌다.

현지 언론인에 의한 새로운 사실 발견

필자는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현지 교민들과의 수소문 끝에 언론인 ‘인다이(Inday Espina Varona, 52)’씨를 커피숍에서 만났다. 지난 4일이다. 필자가 질문했다.

   
활짝 웃는 인다이씨

“혹시 다카야마 유콘에 대해서 아시나요?”
“아! 언젠가 마닐라에서 그를 기리는 세미나가 있었습니다...잠깐만요.”

그녀는 휴대폰을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 이 사람이군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그녀는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마르코스(1917-1989)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의 동상 건립에 대해서 논의됐던 기록이 있군요...이 동상은 일본과 필리핀의 합의에 의해 1977년 11월 17일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네요. 그 과정에서 많은 반대도 있었습니다만.”

   
필자와 인다이(우)씨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서 헤어졌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대한 취재를 위해서라고 했다.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

그가 350명의 식솔들을 데리고 필리핀에 망명했을 때 조선인 ‘가이오(세례명)’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가서 가톨릭 신자가 됐던 사람이다. 그의 서러운 사연은 뒤로 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마닐라 중앙역 건물

돌아오는 길에 아주 오래된 건물을 만났다. 1872년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건설됐던 마닐라 중앙역이었다. 그 건물은 건설공사에 의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건물 중앙의 시계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오후 두시에 머물러 있었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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