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까치 후다닥 아침을 깨우는/ 그 치런치런 돋움에 먼 곳을 가늠하다가/ 이제 가리/ 지척의 저 언덕 넘어서 가리라/ 멍울인 듯 안섶 깊이 숨겼던/ 가을 빔으로 갈아입는다."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는 새로 나온 시집에 들어 있는 김길전 시인의 '은행나무'의 첫 부분이다. 시인의 묘사처럼 '은행나무들의 이파리가 치런치런 돋아나는가 싶더니 어는 덧 가을 빔'으로 갈아입고 있다.

아무튼, 시구(詩句)는 낭만적이나 속전속결로 치닫는 계절의 변화가 야속하기도 하다. 열대야(熱帶夜)에 짜증내며 잠 못 이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밤이 되기도 전에 창문 닫기에 분주한 계절이 빠르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단풍 구경에 여념이 없다. 가을 단풍에서 은행나무를 뺄 수 없다. 은행나무의 노란 이파리가 더 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여의도에는 은행나무가 유난히 많다. 며칠 후면 은행나무의 이파리들이 온통 노란 색으로 물들여 질 것이다.

아직은 푸른 이파리를 지닌 여의도의 은행나무들-.

'보도에 수북이 쌓인 은행나무 이파리들-'

생각만 해도 가을의 운치(韻致)가 저절로 느껴진다. 일이 바빠서 단풍 구경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의도에서 충분히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은행나무들이 긴 작대기로 두들겨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은행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제거하기 위해서란다. 서울시가 5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서 은행나무 열매 퇴치를 위한 '채취 기동팀'을 가동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은행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길에 떨어진 열매를 밟으면 냄새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런 이유로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더불어 '은행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로의 교체 작업도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지난 10일자 보도에서 "11만 4000여 그루에 달하는 서울 시내 은행나무 중 암나무는 10% 정도. 수나무로의 교체는 그루당 200만-300만 원의 예산이 든다"고 했다.

도시 계획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까지 사전에 감안했었더라면 불필요한 예산 낭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암수를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은행나무는 전통적으로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지의 여부로 암수를 감별해 왔다'고 한다. 열매가 맺기 전 어린 묘목의 암수 감별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는 키 큰 은행나무들은 열매가 달린 후에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식물 연구가들에 의해서 유전자 채취에 의해 은행나무도 묘목 시절부터 암수 구별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앞으로 길거리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 수나무들만 폼 나게 살게 됐다. 도시 환경은 좋을지 모르나 거리가 수나무 일색이라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열매 달린 죄(罪)로 퇴출당하는 암나무에게는 억울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