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이 떠나기도 전에 겨울이 찾아 들었다. 왠지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더 추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일관계 또한 날씨 못지않게 춥다. 어쩌면 이미 한겨울인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성신교린(誠信交隣)을 주창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州, 1668-1755)다.

그가 주창한 성신교린(誠信交隣)은 무엇인가.

"성신(誠信)이라는 것은 진심이란 뜻으로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고, 진심(眞心)으로 교류하는 것이다."

"성신의 교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웃 나라의 사정을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고, 말로써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메노 모리 초상과 휘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州)는 1668년 5월 17일 지금의 시카현(滋賀縣)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693년 26세의 나이에 쓰시마(對馬島)의 외교 담당 문관으로 부임해서 1755년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일본의 지성(知性)이다. 조선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특히 조선과의 성신교린을 모토로 하는 외교철학으로 조선의 유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그 시대에 앞서가는 생각을 했고, 이를 몸소 실천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쓰시마 출신이 아니면서도 외 딴 섬에서 일하고 그곳에 묻혔다.

필자는 그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쓰시마의 이즈하라(巖原)- 숙소 앞 높은 산봉우리 위로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태양의 힘찬 기(氣)를 받아 아침 식사를 서둘러서 마치고 지도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바다 한 복판에 떠 있는 섬 쓰시마는 더없이 상쾌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 빛은 더욱 강렬해 졌다.

지도를 펼치자 쓰시마 시(청사)를 중심으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역사의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큰 길 옆 높은 담벼락을 따라가자 고려문이 나왔고, 쓰시마 역사 민속자료관이 있었다. 고려문을 지나 민속자료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선생을 기리는 비(碑)가 하나 있었다.

아메노모리 호슈 겐쇼비(顯彰碑)-

겐쇼비는 우리 식으로 하면 송덕비 내지는 공덕비를 말한다. 아메노모리(雨森芳州) 선생이 생전에 쓰시마 번을 위해서 일한 공적이 많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를 세운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역사자료관 안으로 들어가자 선생의 휘호와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자료관 직원과의 장시간 협의와 신청서 작성 결과 몇 장의 사진을 건졌다.

公爾忘私 國爾忘家

(공적인 일에는 나를 잊어버리고, 국가의 일을 할 때는 가문을 잊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국가 간의 교류도 마찬가지다.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성신교린(誠信交隣)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 이름을 쓰면서 '양국의 우호에 크게 기여했다'는 그의 염원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역사자료관을 나섰다.

"이 글이 언제 나오나요?"

필자를 전송하며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담당 공무원과 작별을 고(告)하고 긴 담벼락을 따라 언덕길을 내려왔다.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한일관계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