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 S 엘리어트'의 시(詩) <황무지>의 일부다. 라일락 향기가 온 누리에 가득하고, 봄비에 의해 잠든 뿌리가 깨어났는데, 시인은 왜 '오히려 겨울이 따뜻하다'고 했을까. '엘리어트'는 서구의 전후(戰後) 세상이 정신적으로 황폐해서 진정한 재생(再生)이 없는 공허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과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까?'

봄비가 내린 후 한바탕 꽃 잔치가 벌어지더니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로 인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꽃놀이도 잠시 뿐, 온 나라가 침통함 속에서 오열(嗚咽)하고 있지 않는가.

생존경쟁과 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졸저(拙著) <홍보는 위기관리다>에서 '생명체는 위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동물을 막론하고 생명체는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와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중도에서 포기하고 마느냐? 에 달려 있다".

 위기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는 지진 발생시 5분 이내에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 규칙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을 평소 훈련을 통해서 몸에 익힌다. 그만큼 초기 대응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위기관리 전문가인 '야마미 히로야스(山見博康)'는 저서 <홍보 완전 매뉴얼>에서 '위기관리 시 초기대응 3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은폐하지 않는다.

둘째,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다.

셋째, 신속하게 행동한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의 승무원들이 행한 안전 규칙에 대한 것은 차치(且置)하고, 사고 발생 후에 취한 제반 행동은 '위기대응 부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중앙일보는 4월 19일자 사설에서 "팽목항엔 119 앰뷸런스들이 줄지어 있고, 기업 등 민간인 자원봉사자들이 내려와 이불부터 속옷까지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대주며 대기하고 있다. 문제는 의욕과 마음은 있는데 모두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책기구는 일원화 안 되고, 대응 매뉴얼이 없다보니 현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지적이다. 온 국민이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음속으로 행방불명된 학생들과 승선자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만 기도할 뿐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유사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아시아나 항공기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부산외대 학생들을 매몰시킨 경주의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사고 등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이유인즉, 우리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안전 불감증 때문이다. 사고가 나면 잠시 요란법석(搖亂法席)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망각해 버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전 대책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프로 정신을 굳건히 하는 것과, 관계 당국의 철저한 안전 관리의 법적 정비가 시급하다.

수박 겉핥기식의 안전 대책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실용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자. 그래야 4월이 더 이상 '잔인한 달'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