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달 26일 층간소음 문제로 평소 갈등을 빚던 이웃집에 불을 지른 장모씨(34)를 방화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달 1월11일 새벽 4시20분경 윗집 주민 A씨(36)의 집 앞 현관문에 놓인 유모차에 불을 지른 혐의다. 이 불은 현관문과 계단벽 등에 옮겨붙어 145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 지난달 14일 서울 상도동 한 아파트. 허모씨(45씨)의 집에 아랫층에 사는 김모씨(24)가 찾아왔다. 김씨는 허씨에게 "쿵쿵거려 시끄럽다"고 따졌다. 하지만 김씨는 허씨가 "그런적 없다"고 계속 반박하자 품속에서 흉기를 꺼내 휘굴렀다. 허씨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으나 18바늘을 꿰매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최근 일어난 층간소음 분쟁 및 피해 사례들이다. 이처럼 이웃간 살인이 일어나는 등 갈등이 격화되고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면서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법적 기준을 제시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층간소음 기준은 시행도 되기 전,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존 환경부 기준보다 크게 완화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또 당사자간 화해를 주된 목적으로 기준을 만들다보니, 문제 해결에 이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구체적인 법적 기준이 나와 입주자간, 입주자와 건설사간 분쟁, 즉 고소·고발이 늘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시끄럽다 느껴도 법적 기준 충족 어려워"

11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안)'을 마련해 다음달 14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 규칙에는 20가구 이상 공동주택 즉 아파트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의 경우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 등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층간소음으로 간주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규칙에는 △뛰거나 걷는 동작으로 발생하는 소음 △문, 창문을 닫거나 두드리는 소음 △망치질, 톱질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 △탁자나 의자 등 가구를 끌면서 나는 소음 △헬스기구, 골프연습기 등의 운동기구를 사용하면서 나는 소음 △텔레비전, 라디오, 악기 등을 통해 발생되는 공기전달 소음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흔히 층간소음 분쟁에서 주로 나타나는 사례들이 열거된 것이다. 위아래층 가구는 물론 옆집 등 전 가구에 적용된다.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 / 자료=국토부

문제는 소음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뛰거나 걷는 등 벽이나 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내는 소음은 '직접충격 소음'으로 구분되는데, 1시간동안 측정한 소음을 1분 단위로 평균값을 매겨 43dB이 넘으면 층간소음으로 볼 수 있다. 주간(오전 6시부터 밤 10시)에 아이가 1분간 뛴 소리의 크기가 43dB(데시벨)을 넘으면 층간소음이라는 얘기다. 야간에는 38dB을 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올해 2월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가 마련한 기준(수인한도, 사람이 견딜수 있는 한도)보다 크게 완화된 수준이다. 환경분쟁조정위는 당시 주간 40dB, 야간 35dB로 정했다. 이번 규칙보다 3dB이 낮다.

게다가 국토부가 기준을 정하기 앞서 연구용역(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과정에서 실험한 결과를 봐도 43dB을 충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 28kg의 아이가 1시간동안 뛰는 실험에서 평균 39~40dB이 나왔다. 10여명의 주부평가단이 직접 소음을 들어보는 청감도(귀에 잘 들리는 정도) 실험에서 견딜 수 있는 한도로 지목한 39~40dB보다도 낮은 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인한도의 경우 분쟁조정위가 배상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피해자 중심으로 설정한 수치"라며 "이번 기준은 분쟁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 성격이 약간 다르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이번 법적 기준에 적용 아파트 범위도 구체화했다. 아파트를 건설할 때 반영하는 충격음 성능기준이 도입되기 전인 2005년 6월 이전에 사업 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이번 법적기준보다 5dB씩 더한 값을 기준으로 삼기로 한 것. 결국 층간소음 분쟁이 빈번한 기존 아파트들은 소음 기준이 43~48dB으로 늘어나 한층 완화된 기준을 적용을 받는 셈이다.

층간소음에는 냉장고 작동음 등 일상적으로 들리는 배경소음의 보정치도 반영이 되기 때문에 실제 측정치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층간소음을 측정하기 앞서 배경소음을 재게 되는데 만약 배경소음이 30dB로 나타났고 측정소음이 39dB로 나왔다면 실제 층간소음은 보정치 0.6dB이 빠진 38.4dB로 기록되는 등이다.

◇"소음 위치 정확히 몰라"…고소·고발 늘어날 것

측정하는 방식도 논란거리다. 층간소음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만든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1661-2642)'에 현장진단을 신청해야 한다. 전문가가 신고된 주택을 직접 방문해 소음측정을 진행해 기준 수치를 넘는 것이 확인돼야만 층간소음으로 인정된다. 개인이 간이 소음측정기를 이용해 수치를 측정해선 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순간적으로 발생한 층간소음은 측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갖는다. 정부는 층간소음이 지속적으로 누적해서 발생하는 경우 입주민들이 참지못해 신고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신고 이후 측정이 실효성이 없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연 전문가가 찾아올 때를 기다려 층간소음을 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소음이 원천적으로 방지되도록 건축 기준을 강화하는 것 대신, 소음 기준을 만들어 입주민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법적 기준을 만들어 분쟁을 최소화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분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소음진동기술사회 관계자는 "위아래, 옆집까지 적용한다고 하나 실제 뛰는 행위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구조적으로 건축물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이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지를 정하지 않은 채 시민들에게만 뛰지말라는 등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자동차를 사더라도 연비라든지 사양이 정확히 드러나는데 연립주택과 아파트 등은 그런 기준을 사전에 알고 입주하기 쉽지 않다"며 "이번 기준으로 시민간, 혹은 시민과 건설사간 고소·고발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