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경기의 장기침체로 자금난을 겪은 건설기업들이 유동성 개선을 추진했음에도 이들 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초리는 여전히 차갑다. 업황 개선을 발판으로 돈을 벌어 부채를 줄이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지 못한 점이 상습적인 위기설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올해 회사채 288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이중 두산건설은 오는 21일(550억원)과 29일(100억원)에 총 650억원을 갚아야 한다.

요즘처럼 불황 업종에 대한 투자심리가 냉각된 상황에서 두산건설의 신용등급( BBB+)이 비우량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환발행(만기를 맞은 회사채를 갚기 위해 발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해말 기준 두산건설이 보유한 현금은 1580억원 수준이어서 올해 회사채를 자체 상환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두산건설은 일단 이달 회사채 만기는 자체 자금으로 갚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두산건설이 B2B전자어음(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을 연체하는 등 자금난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두산건설 관계자는 "B2B전자어음을 연체하고 있지 않고 발행 규모도 크지 않다"며 "이달안에 만기되는 회사채 상환 금액이 와전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두산건설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건설은 부실을 상당부분 털어냈고 추가 손실 가능성도 적어 앞으로 재무건전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기업 부실의 주범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잔액의 경우 두산건설은 2009년 1조8800억원에 달했으나 올 2월 현재 3350억원으로 줄였다. 시행업체가 부동산개발 자금인 PF를 끌어들인 뒤 시공업체가 이에 대한 보증을 서는 형태로 해당 사업장의 분양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건설사 부실로 이어진다. 건설경기 불황 국면에선 PF 보증잔액이 많으면 부실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는 구조다.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두산건설의 유동성 위기에 불을 지폈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최근 애프터리빙(전셋값 수준으로 일정기간 산 뒤 분양여부를 결정하는) 등으로 입주율을 80% 이상 끌어올렸다.

최원경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대규모 PF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됐고 주택사업을 추가로 계획하고 있지 않아 앞으로 PF 잔액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지난해말 아파트 평균 분양률 95%를 기록하고 있고 할인 분양에 따른 손실을 고려해 충당금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분양과 연계된 리스크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최대주주인 두산중공업으로부터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부를 넘겨 받고 유상증자 등으로 1조원 가량의 자산을 확보했다. 또 지난해말 상환전환우선주(RCPS) 4000억원을 발행, 부채비율을 220%대에서 150%대로 끌어내리는 재무개선안을 단행했다.

하지만 HRSG의 본격적인 매출 인식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 그 전까지 일상적인 현금수요와 회사채 만기에 대응하려면 추가적인 유동성 확충이 필요하다. 두산건설은 이런 점을 고려해 5억달러 규모의 해외사채 발행을 검토했으나 최근 글로벌 시장 불안을 감안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다른 유동성 확보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원경 애널리스트는 "두산건설이 지난해말 합병한 렉스콘의 공장부지를 담보로 자산유동화를 추진하고 사회간접자본(SOC) 공사에서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00억원을 웃도는 손실을 반영, 자본잠식 위기에 놓인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건설도 유동성 확보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신세계건설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1900%에 달하는 부채비율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세계건설은 지난 14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행예정주식수를 1000만주에서 1억주로 늘리고 보통주와 우선주로 제한됐던 발행주식의 종류도 상환주식과 의결권을 배제한 주식 등으로 다양화하는 정관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정관변경은 신세계건설이 증자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현재로선 유상증자와 관련된 계획이 없으며 트리니티 골프장 회원권 분양을 통해 유동성 확보하고 있어 자금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여력을 갖추고 있다"며 유상증자 추진설에 선을 그었다.

그룹 계열사인 만도로부터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진 한라(옛 한라건설)도 자구노력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만도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만도의 한라 지원을 문제삼아 신사현 만도 부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 지분율에서 앞서는 만도의 최대주주는 원안대로 신 부회장의 대표이사 연임을 통과시켰으나 앞으로 한라의 유동성 지원에는 주요주주들의 반대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한라도 그룹의 후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력갱생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라의 올해 무보증 회사채 만기규모는 1800억원. 오는 4월17일 만기를 맞는 회사채 1000억원은 정부의 회사채신속인수제를 통해 갚기로 했다.

 한라는 부실 PF사업장으로 부담을 줬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라하이힐을 현대백화점을 포함한 범 현대가 기업의 출자를 토대로 조성된 34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펀드에게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건설업계 신용분석 관계자는 "9월에 다가오는 회사채 800억원 상환 자금은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지만 가산동 한라하이힐을 매각하면서 그 전까지 유동성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계열사의 측면 지원이나 자산매각으로 유동성 위기를 넘기고 있지만 정상적인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자금압박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발판으로 사업에서 현금을 벌어들여 재무 건정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