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과 춘천을 가고 싶습니다. '겨울 연가 지금은?'이라는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서입니다."

TV아이치(愛知)의 보도 제작국 디렉터 '미나가와 사치요(皆川幸代)'씨의 말이다.

'아직도 겨울연가?'

필자가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했다. 겨울연가(일본어: 후유노 소나타)는 2003년 4월 3일 일본의 NHK에서 첫 방송을 했다. 그것도 위성채널(BS2)이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드라마다. 그런데 의외로 대박을 쳤다. 급기야 그 해 12월 재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를 못 견디어 2004년 4월에서 8월 까지 NHK(본방송)에서 다시 방영을 했다. 겨울연가가 잠들었던 일본 중년 여인들의 야성(?)을 깨운 것이다. 그런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그곳을 촬영한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이른 새벽(6시)에 집을 나섰다. 모처럼의 이른 출근이어서 다시 과장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남이섬으로 가는 길은 짓궂은 미세먼지가 가로막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북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봄이 흐르고 있었고, 부지런한 목련들이 꽃봉오리를 틔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전 8시30분 쯤 남이섬 입구에 도착했다. 남이섬으로 건너는 배가 9시부터 운행된다고 했다. '이른 아침이라 누가 얼마나 올까.'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9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 속에서 일본 여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배안에 서 일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10년 전에 친구들과 같이 왔었습니다. 이번에는 저희 4형제가 함께 왔습니다. 이쪽이 큰언니, 둘째 언니, 셋째 언니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너무나 좋아서입니다."

 나이가 이미 57세라는 막내 동생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지만, 필자도 묻지 않았다.

 5분 정도의 짧은 승선시간인지라 길게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배가 남이섬에 도착하자 나이가 무거운 여인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준상(배용준)과 유진(최지우)이 첫 키스를 했던곳' 안내판 뒤편에 그녀들의 모습이 보이다가 다시 사라졌다. 일본의 디렉터와 카메라맨이 무척 아쉬워했다.

남이섬 곳곳에는 겨울연가의 흔적이 아직 살아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준상과 유진의 커다란 사진 앞에서 잠시 TV 아이치의 디렉터가 유진이 역할을 했다. 프로 정신으로 무장된 그녀도 여인임에 틀림없었다.

그럴 즈음에 일본 관광객들이 나타났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이어졌다.

"너무 좋습니다. 지금 눈이 내린다면 이 길이 더욱 멋질 텐데....아쉽네요."

 "아! 박용하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일본에도 그의 팬이 참으로 많거든요. 아직도 그의 얼굴 모습이 생생합니다."

 남이섬의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었다. 인파 속에는 필리핀 등 동남아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작은 섬이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난무했다.

 필자 일행은 다시 준상이의 고교 시절 거닐던 담벼락(춘천고)과 중앙 시장, 춘천의 명동 등을 돌아서 닭갈비 골목으로 갔다. 거기에서 일본인 관광객들과 조우(遭遇)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준상이가 고교시절 살았던 집이다. 물론 드라마 속의 집이다. 준상이의 집 주변은 온통 고층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었다.

"재개발로 인해 이 집이 헐리게 된다"는 일본어 현수막이 바람 따라 슬프게 흔들렸고, 길 잃은 강아지들이 무리지어 녹슨 대문 앞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준상이의 집이 곧 헐린다니요? 참으로 슬픈 일이군요."

 일본 TV 아이치 '미나가와 사치요' 디렉터가 말끝을 흐렸다.

 '겨울 연가 10년- 이렇게 잊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