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흥얼거릴 수 있는,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진정한 우리의 가곡(歌曲)이다.

'3월이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봄처녀.'

아니나 다를까? 지난 9일은 봄처녀가 오는 날이고도 남았다. 그런데 봄 치고는 기온이 너무 높았다. 여름날을 방불케 하는 기온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낮 기온이 23.8도, 제주도는 30도에 가까운 28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어찌했던,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빨리 벗어나는 것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하지만, 필자는 급격한 계절의 '빠름'에 대해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지구의 종말이 오고 말 것인가.'

창(窓)밖의 달라진 분위기에 마냥 집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서 집을 나왔다. 집을 나서자마자 바람결이 달라져 있음을 피부로 실감했다. 아파트 단지의 숲 속에서는 참새들이 무리지어 재재거렸고, 잔디밭  돌틈새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풀들의 새순이 바람에 흔들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새싹들이 훌쩍 자란 것이다.

한강변 고수 부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자전거·유모차는 물론, 목줄을 맨 강아지까지 사람 속에 섞이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봄옷은 기본이고, 젊은이들은  '아니 벌써?' 반팔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에 반해 3월의 고온은 화마(火魔)를 26건이나 몰고 왔다. 남쪽으로부터 달려온 초속 10m의 강풍은 화(禍)를 더욱 부채질했다. 뜨거운 봄이 오히려 위험을 자초했던 것이다.

산불은 대체로 사람들의 부주의에서 발생한다. 산림청은 '올 들어 8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약 40%가 논과 밭두렁 태우기가 원인이었고, 36%가 쓰레기 소각과 담뱃불 등에 의한 실화(失火)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10일 오후 포항에서 발생한 산불은 중학생이 장난으로 낙엽을 태우다가 발생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화재였다. 이 화재는 3개의 산을 집어삼키고, 52만 시민을 뜬 눈으로 밤샘하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대화재가 되고 말았다. 경찰이 12살의 이모 군(君)을 방화 협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수 십 년 키워온 나무들이 숯덩이로 변해버린 난감한 현실 뿐 아니라, 사망 1명, 부상 14명, 가옥 56채가 소실됐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란 말인가. 아무리 땅을 치고 통곡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북한은 '60년 정전협정을 백지화 하겠다'면서 해안포 진지를 모두 열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의 행보가 포항 소년의 불장난처럼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래저래 뜨거운 3월이다. 그래서 '빠름'이 두려운 것이다.